"땡글아, 집에 가자~"
난 그녀를 눈이 땡그랗다고 땡글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쒸~ 아직 초저녁이구만... 더 놀다 가자. 응?"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가엾는 표정으로 공겨하는데, 도저히 베겨낼 재간이 없다. 나의 패배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다.
결국 맥주 500cc 네 잔 더 싴 마시고 밖에 나갔는데, 이번엔 노래방엘 가잡신다.
노래방 주인이 시키지도 않은 서비스 시간을 계속 주는 바람에 두 시간을 두 명이서 불렀다. 목 아파 죽는 줄 알았다. 부른 거 또 부르고, 또 부른 거 또또 부르고... 휴우~
다리 풀린 땡글이랑 같이 택시 타고 동네까지 가서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인 땡글이네 집 대문까지 우리 땡글이 모셔다(?) 드리고, 대문 잘 열고 그녀가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후 내 집으로 가려는데, 땡글이네 집 안에서
"이노무 기집애!!!
어쩌구 하는 아주머니의 고성이 들리는 걸로 봐선 오늘은 땡글이가 엄마한테 제대로 혼나는 날인가보다.
어쨌든 그 날 이후 나와 땡글이는 더 가까워져서 저녁이나 이른 밤 쯤에 잠깐이라도 보거나 통화르 하거나 타콕이라도 하거나 하는 둥 어떻게든 최소 하루에 한 번은 늘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설령 카톡 내용이
"땡글아 뭐함?"
"숨쉬고 있음"
"열심히 숨쉬거라"
"ㅇㅇ 오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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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회사가 25일이 월급날이라고 했지?"
"근데 뭐? -_-;;"
"내일이 25일이네. 갖고 싶은 치마가 있는데 'ㅇ'/"
--- 1시간후
"오빠"
"어이 오빠씨"
"야 아저씨"
"이 양반 일씹하는 거 보소. 나 당장 니 집에 야구 빠따 들고 쳐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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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웃냐?"
"ㅋㅋㅋ 그냥 ㅋㅋㅋㅋㅋㅋㅋ"
"...... 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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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쓸데 없는 내용이라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연락했다. 안하면 꼭 일 보고 뒤를 안닦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둘이 시간 맞을 땐 맛집 탐방도 가고 연극도 보러가고 놀이동산도 가고, 기분 좋을 땐 책이나 작은 악세사리, 별 부담없는 티셔츠 같은 것도 선물로 주고 받았다.
이런 썸 같기도 썸조차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관계가 한동안 이어졌다.
Ⅴ)
이런 관게에 극적인 분화가 생긴 건 크리스마스 시즌 때를 기점으로 해서다.
폰 사건으로 땡글이를 알게 된 게 10우러 중순에서 말경, 서로 말 편하게 하고 매일 연락 주고받게 된 게 11월 중순경...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이브 4일 전에 그녀랑 동네 놀이터에서 저녁 때 잠깐 만났다.
"으.. 추워~ 추운데 걍 전화로 연락하지. 왜 불렀냐?"
"남자가 이 정도 가지고 엄살은~"
그건 양성평등의 가치에 위배되며 왜곡된 남성관에 입각한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저적하려던 찰나 땡글이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여하튼, 오빠! 24일에 약속 있어?"
"아니.. 뭐.. 딱히 없는데.. 왜?"
"내가 크리스마스 플랜을 세가지 짜봤거든~ 들어봐."
"응.. 추우니까 발리 얘기해. 그리고 그 날이 니 생일이냐? 무슨 계획씩이나 짜고 있냐?"
"아~ 이 아저씨 말 많네.. 조용히 하고 들어보시옷!
1안 : 집에서 혼자 티비에서 해주는 특선 영화나 보며 재미없게 지낸다.
2안 : 남친도 없는 고등학교 동창 기집애들이랑 솔로 정신으로 밤새 퍼마시며 재미없게 하얗게 불사른다.
3안 : 그래도 어쨌든 오빠도 성별은 남자라 짝 없는 남녀 한쌍끼리 위로하며 재미없게 보낸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우~"
"어떻게 해도 재미 없을 거, 그래도 남정네인 오빠랑 같이 보내는 게 제일 덜 재미 없을 것 같아서.. 나 착하지? 같은 동ㄴ 이웃으로서 오빠한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줄이나 아셔."
얼씨구 이 지지배 말하는 뽄새 보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