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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서&주민지 시리즈/향기(香氣)

향기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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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저리 살펴보다 폰 뒷면에 작은 꽃모양 스티커가 붙어있는 게 눈에 뜨었다. 아뿔싸! 아까 그 귀요미랑 부딪쳤을 때 바뀐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귀요미가 줍던 폰 색깔도 언뜻 보니 흰색 같았는데 기종도 같은 것이었나? 어쩌지? 그래 내 폰 번호로 전화해보자. 라며 다시 화면을 켰는데... 젠장 비번 걸려있네..

그 순간 부르르 진동이 와서 놀라 하마터면 폰 떨어트릴 뻔 했다. 착신 분호가 내 폰 번호인 걸 보니 아까 그 귀요미랑 바뀐 게 맞나 보다. 내 폰엔 비번 안 걸려 있었던 게 다행이다.

"여보세요."

"네, 혹시 제 폰 가지고 계신가요?"

초롱초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런 것 같네요. 아까 저랑 길에서 부딪히신 분 같은데..."

"아! 아까 그... 분... 근데 왜 폰 바뀐 걸 몰랐을까요? ㅎㅎ"

"아마 같은 기종, 같은 색깔이라 몰랐나봐요. ㅋ 근데 지금 어디시죠?"

"어~ 지금은 버스 타고 일하러 가는 중인데..."

"일하는 데가 어딘데요?"

"XX역 4번 출구에서 나오셔서 조금만 걸어오시면 2층에 「Angel Eyes」라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예요."

XX역이라면 이 동네에서 아무 버스나 타도 10분 거리다.

"그럼 제가 지금..."

--- 잠깐! 지금 거기 찾아가서 폰 전해주면 일하느라 바쁠 테니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겠자? 일단 언제 끝나는지 ㅁㄹ어봐야겠다. 예쁘게 생겼던데, 이런 인연을 그냥 놓치는 건 월하노인(月下老人 : 남녀 사이 연분을 맺어준다는 동양판 큐피드 영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역시 난 이런 쪽 잔머리는 아인슈타인급이야. ---

이런 긴 생각을 실제로는 1초 만에 끝내고 말을 이어갔다.

"... 은 저도 일이 있어서 안되고, (사우나 갔다가 한숨 자는 것도 주말에 해야 하는 일이다.) 언제 마치시는지 알면, 위치는 대략 알 것 같으니 가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밤 9시 반에나 마치는데... 일 마치고 이쪽에 오실 수 있으면 제가 잠깐 나가서 뵐게요."

"아! 저도 일 마치고 올 때면 그 시간쯤 될 것 같은데 제가 그냥 찾아뵙겠습니다. 까만색 간판에 흰색 글씨가 있거, 눈이 대빵만 하고 날개가 있는 고양이 그림 있는 카페 맞죠? 일층에는 만두집 있고..."

"풉~ 대빵... ㅋㅋ 맞아요. 거기예요."

"네.. 그럼 9시 반까지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9시 반까지 뭘 하며 시간을 때울까? 아직 7시간 넘게 남았다. 일단 목욕하면서 생각하자. 목욕탕 가야 할 분명한 명분이 생겼다, 목욕 도구를 챙기고 집을 나서는데 집 근처 나무에서 까지 2마리가 지저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나 흥얼거린다.

 이승환의 「좋은 날」

밉기만 하던 동네 아이들이 왜 이리 귀엽게 보이고~ 유후

거리는 온통 그대 향기니 정말 그대를  사랑하게 된 건가

조금조금 떨리는 마음은 반기는 그대 웃음에 날아가 버리고

나를 나를 부르는 그대 입술에 입 맞추고 싶지만 다음 기회에~

 

-끝-

.....

....

...

..

.

이 아니다.

엔젤 아이즈에 갔을 때 귀요미 그녀는 가게 정리를 하고 문 닫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바쁘신데 이까지 오셔서 감사하다며 여기 만두집이 정말 맛나는데 출출하시면 만두 대접이라도 하겠다기에 나도 내 폰 보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내가 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사코 자기가 사겠다기에, 나는

"그럼, 다음번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꺄르르 웃으며

"그럼 우리 또 만나는 건가요?"

라고 하며, 「쌍화점」이라는 이름의 만두집의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같이 만두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지금 대학 3학년이고 산업디자인을 전공한단다. 그리고 카페는 사실 엄마가 운영하고 있는데, 동네 친한 아줌마 아저씨들끼리 부부동반 1박 2일 온천여행 떠나서 낮에 엄마랑 바통 터치하고 지금까지 가게 보고 있었다고 했다. 이 좋은 토요일을 가게에서 날리는 것도 억울했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 먹었으면 정말 서러울 뻔했다며 나랑 폰 바뀐 게 그래도 혼자 서글프게 밥 먹지 말라는 하늘의 배려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뒤로 내가 대접한다는 구실로 만났고, 그다음에는 한동네 주민이란 걸 핑계로... 몇 번 만나다가 영화도 같이 관람하고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영화 관람 후 작품에 대한 비평도 같이 했다.

그렇게 생맥주 기울이다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닌데 그냥 말 편하게 하기로 했다.

"나 처음엔 나랑 나이 차가 좀 있어서 아저씨라고 부르려다가 오빠가 나이 먹은 거 서러워 할까 봐 오빠라고 부르는 거야~ 나 착하고 자비롭고 관대하지? 그치?"

별 이상한 소릴 하는 걸 보니 취했나 보다. 술이 약했구나.

그밖에 자기는 신(神)끼 같은 게 살짝 있다는 소리도 했다.

"내.. 내가 어릴 때부터... 신끼? 영능력? 그런 게 좀 있어서어~ 기... 귀신도 마~악 보이고 그래따! 지금은 쩝~~ 안 보이지만... 어린이의 순수한 동심이 사라지만 귀신도 안 보이나 봐.. 크헤헤"

"아.. 그랬구나.. 아하하~"

"근데, 지금도 살짝 신끼가 남았는지  사람 눈동자를 보거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 영혼이 맑은 지 탁한 지는 바로 안다요~ 헤헤"

"내 영혼은 어떤데?"

"흠.. 오빠 영혼도 참 맑아 보여. 그러니 내가 만날 같이 오빠랑 놀지이~ 근데.. 있잖아~ (작은 소리로) 변태의 기운도 쬐끔 느껴져.. 크헤헤"

"아... 아하하... 변... 태..."

취한 게 확실하다. 얼른 집에 데려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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