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주기 전에 하나 물어볼 게 있어......"
안 그래도 땡그란 눈을 더 땡그랗게 뜨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땡글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왜 이래?
"나 좋아하지? 진지하게 묻는 거다."
순간 뇌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영화 속 특수효과처럼 그녀만 보이고 배경은 하얘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도 뽀샵 처리한 것처럼 얼굴 전체에서 광채가 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수십수백번 예스를 외치고 있건만 입은 도무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대답을 기다리다가 답답했는지 좀 삐친듯 말했다.
"다섯 셀 때까지 말 안하면 나 집에 간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에..."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여기서 뾰족한 수란 없다.
"좋.. 좋아해! 너 좋아해! 아니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해! 처음 우연히 봤을 때부터 너무 예쁘게 새겨서 순간 아무 생각도 안났고, 정말 인연인건지 폰 사건으로 너랑 엮였던 날, 이 근처 나무에서 까치 두 마리가 지저궈던 장면도 생각나! 그 때 왠지 좋은 징조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 "
여기서 잠깐 한박자 쉬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너랑 만날 때마다 좋았어. 근데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서 좋아하는 티를 낼 수 없었어. 섣불리 좋아한다고 했다가 널 아예 볼 수조차 없게 될까봐 사실 겁도 났어. 그냥.. 이젠 그냥 말할게. 땡글아. 아니, 주민지! 널 좋아해!"
나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온 걸까? 말도 이렇게 길게 할 줄 몰랐네.
3초쯤 적막이 이어졌을까? 그녀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피~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기침, 가난, 사랑이라는 영화 대사 몰라? 나 좋아하는 거 다 티났네요. 이 아저씨야~"
라며 앙증맞은 주먹으로 가볍게 내 가슴을 톡톡 쳤다.
그리고
"그래. 어쨌든 약속대로 선물 줄게."
라며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짠! 서언~무울~ 헤헤"
목도리였다. 역시 짐작대로 저렴해보이는 것이었지만, 뭐 어떤가? 누가 주는 선물인데...
"어? 감동 받은 표정이 아닌데? 이게 어떤 건지 알아? 내가 손수 짠 목도리라구! 목도리 털실도 영국산 최고급 양털이란 말야. 구하기 털실 구하랴... 날짜 맞춰 목도리 짜랴... 얼마나 힘들었는데~"
라며 내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몽실몽실한 털실의 감촉이 뭔가 아늑함을 준다. 들떴던 내 감정이 조금은 수그러드는 느낌이 들었다.
헛기침 한 번 하고 차분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너도 대답해 줘. 넌 날 어떻게 생각해?"
그녀가 생글 웃으며 말했다.
"바보 오빠야. 내가 직접 짠 목도리가 대답이지. 또 대답이 필요해? 오빤 훨씬 오래 전에 눈치 챘어야 했어. 세상 어떤 여자가 마음도 안가는 남자랑 매일 시시콜콜 연락주고 받니? 그리고 내가 마음에도 없는 남자랑 단 둘이 크리스마스까지 함께보낼 여자애로 보여? 그럼 답답한 바보 오라버니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로 할게."
그녀는 후~ 심호흡 한 번 하고 말을 이어갔다.
"나도 좋아해. 오빠! 아니 박한서! 난 니가 침작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고 있다구!"
살짝 하이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그리고 그녀가 내 목에 걸린 목도리를 자기쪽으로 당긴건지, 내가 다가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얼굴이 가까워지고 그 다음엔 입술이 가까워지고
서로 내뿜는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드디어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처음에는 입술만 탐하다가 내가 먼저 혀를 그녀의 입 속에 넣었다.
그녀는 가는 한숨을 쉬더니 자기 혀도 내 입에 넣었다.
그렇게 십분은 키스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좀 더 용기를 내어 내 입술을 그녀의 귓볼로 천천히 옮겼다.
그녀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내 입술은 그녀의 목덜미로 다시금 옮겨갔다. 그녀의 숨결이 더 거칠어졌고, 나도 모르게 내 손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게 되었다.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더 진도를 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녀의 상의를 위로 살며시 올리고 벗기는데 순순히 응해주었고 그녀 스스로 자신의 브래지어 끈을 풀었다.
탐스러운 오렌지 같은 건강한 빛깔과 상큼한 향이 나는 젖가슴이었다. 그녀의 딸기맛 츄파춥스 같은 유두에 입을 맞추자 그녀는 내 머리와 목을 두 팔로 감싸며 작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