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 삼남매 본격 에피소드 0034 (화끈한 불맛 사랑)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떡볶이 가게 '떡볶이 고추의 추억'... 도진은 영업을 마감하고 테이블 정리를 하고 있었다. 페퍼는 어디선가 손에 까마귀 목각 인형을 들고 들어왔다.
도진: 어~ 왔어? 근데 왜 기운이 하나도 없어??? 방금 호시 만나고 오는 길 아니야?
페퍼: 에~휴~~~~ 응 맞아. 재밌게 놀다 왔어.
도진: 재밌게 놀았다면서 왜 이래? 손에 그 나무인형은 뭐야?
페퍼: 호시가 캄챠카 반도에서 사온 기념품. 원주민의 토템이라나 뭐라나~
도진: 감기라도 걸렸어? 표정이 아주 안 좋은데?
페퍼: 군인은 감기 따위 걸리지 않지 말입니다. 에휴~~~
도진: 한숨 그만 좀 쉬어. 땅 꺼지겠다. 호시가 너한테 섭섭한 말 했어?
페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나 먼저 일찍 잔다~
도진: 왜 저러지? 나참~
페퍼는 뭔가 호시가 부러웠다. 지금껏 남자친구니 연애니 그런 거 관심도 없었는데, 막상 요정 친구가 달달한 신혼 생활을 하는 걸 보니 무언가 가슴 속에서 후벼 파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페퍼: (침대에 풀썩 몸을 던지며 혼잣말로) 페퍼는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훈련만 받다가 인생 끝나네~♪ 에휴~~~ 인생 참 재미 없네. 내 인연은.. 어디에.. (순간 서큐의 붉은 실 이야기가 생각났다. [페퍼의 상상 속 서큐: 도진이는 너와 붉은 와이어로 묶어있다고~ 멀리서 찾지마. 몇 걸음 안에 있잖아. 호호호]) 악!!! 왜 저런 게 내 붉은 실이냐구~ 엉엉~
씻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도진의 귀에 페퍼의 방에서 페퍼가 악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진: 쟤 진짜 왜 저래? 호시랑 싸웠나? 내일 기분이나 풀어줘야겠네.
다음날 아침, 도진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페퍼의 방 문 앞에서 페퍼를 불렀다.
도진: 페퍼야. 일어났어? 페퍼야~ 페~~~퍼~~~야~~~ 응? 방에 없나? (노크 후 방 문을 열었다.) 어? 벌써 일어났나? 어디 갔지?
그 시간 페퍼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명륜동에서 와룡공원을 거쳐 성북동 일대 산길을 조깅하고 있었다.
페퍼: 헉헉! 잡생각엔 구보가 최고지! 헉헉! 전투! 전투! 전투! 전투! 헉헉!
그렇게 3시간을 조깅하고 집에 돌아오니 쌀쌀한 날씨인데도 페퍼는 완전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도진: 히익! 너 뭐하고 온 거야? 온몸이 땀이야. 너 반팔 입고 나간 거야? 이 날씨에 반팔 입고 땀 그렇게 흘리면 감기 걸려!
페퍼: (도진을 째려보며) 인간! 왜 이렇게 갑자기 친절한 거냐? 니가 언제부터 내 건강 신경 써줬다고! 흥!
도진: 진짜 어제부터 쟤 왜 저래? 마법에 걸린 날인가? 뭐지?
페퍼는 씻고 나와서 장사 준비를 하고 있는 도진의 옆으로 갔다.
페퍼: 배고프다. 밥 먹자.
도진: 야. 니가 밥 좀 차려봐라. 너 집안 일 하겠다고 약속도 해놓고는 어떻게 한번도 안 지키냐?
페퍼: 솔직히 나 요리 잘 못해. 맨날 군대 취사병들이 해주는 밥만 먹었지. 내가 뭐 만들어 본 적은 없어서... 니가 내 요리 먹으면 죽을 지도 몰라.
도진: 뭐든 해봐야 느는 거야. 니가 요리를 어떻게 해도 맛있게 먹어줄테니까 니가 직접 요리 한 번 해봐~
페퍼: 아! 짜증나! 왜 이렇게 나긋나긋 말 해?
도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짜증내냐? 너 진짜 마법에 걸린 날이야?
페퍼: 마법 같은 소리 하네~ 아 몰라!
도진: 야! 근데 왜 이유도 없이 자꾸 짜증 내고 화 내고 그러는 건데??? 너 호시 결혼식 이후부터 좀 이상해졌어. 친구가 결혼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한 거야? 아님.... 붉은 실 이야기 듣고 그런 거야? 뭐야?
페퍼: (붉은 실 이야기에 뜨끔 하면서) 붉... 아 몰라! 밥 차려주기 싫으면 나 혼자 컵라면 끓여먹을 거야.
그러고 나서 페퍼는 가게 선반에 있는 컵라면을 하나 꺼내들고 자기 방으로 휙 들어가버렸다.
도진: 도대체가~ 인간 여자든 요정 여자든 여자 마음은 알 수가 없어요~ 에휴~
평소보다 1시간쯤 일찍 도진은 가게 문을 닫았다. 페퍼는 오늘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기 방 안에서 컴퓨터로 FPS 게임만 하고 있었다.
도진: 페 대위. 사격 좀 잘 하는데~
페퍼: (키보다와 마우스를 딸깍거리면서) 실제 사격은 더 잘 해. 내가 다른 애들보다 일찍 대위로 진급한 이유가 워낙에 사격을 잘해서구만... 나 저격팀 팀장도 맡아본 요정이야.
도진: 너 화염 마법 쓴다며? 근데 총도 쏴?
페퍼: (게임을 그만 두며) 당연하지. 임마. 쓸 수 있는 무기는 다 쓰는 거지. 무슨 군인이 마법만 쓰겠냐? 화염 마법, 각종 총기, 폭탄류, 총검술, 단검술.. 나 다 잘해~ 정치-사제 계급이나 생산 계급 여자애들이 바늘 들고 십자수 놓고 있을 때, 나는 쌍칼 들고 십자베기 하고 있었어.
도진: .... 페퍼야. 너 기분 전환도 할 겸 오늘 저녁은 나랑 밖에서 먹을까? 내가 쏠게.
페퍼: 뭐 먹을 건데?
도진: 여기 혜화역 4번 출구쪽에 매운 족발집 새로 생겼다더라. 단골 손님들 말 들어보니까 완전 맛있다던데..
페퍼: (급화색) 매운 족발? 많이 맵대?
도진: 5단계까지 있다던데? 5단계는 진짜 미친 듯이 맵대..
페퍼: (급 군침 흘리며) 나는 무조건 5단계! 가자! 인간! 배고프다.
도진: 야 너 오늘 하루종일 게임만 했잖아.
페퍼: 내가 오늘 응? 게임 속 세계에서 수많은 전장을 얼마나 누비고 다녔는데... 응? 내가 오늘 사살한 적이 100명도 훨씬 넘는데.. 응? 얼마나 배고프겠냐고~
도진: 피식~ 에구 그래 참 잘했어요~ 가봅시다~ 외투 입어. 춥다.
그렇게 페퍼와 도진은 매운 족발집으로 가서 5단계 매운맛 족발과 소주 1병을 시켰다.
게걸스럽게 5단계 족발을 먹는 페퍼를 보고 도진도 한입 베어물었으나 혀에 고기가 닿자마자 느꼈다. '난 이거 먹으면 죽는다.'
도진: 저기.. 안 매운 족발도 하나 더 주세요.
페퍼: (자기도 매워서 헉헉 거리며) 허어~ 씁~ 왜 그래? 너는 못 먹겠어? 어우~ 맵긴 매운데 나한텐 이게 딱 좋다.
도진: 그래.. 캡사이신 많이 먹고 기운 충전 많이 하거라. 자.. 소주 한 잔 받어.
페퍼: 응!
그렇게 소주가 한잔 두잔 들어가자, 페퍼도 술기운이 돌면서 쌓였던 말들이 터져 나왔다.
페퍼: 아씨~ 서큐 언니... 거짓말이겠지? 너랑 나 사이에 소방 호스 굵기의 뭐?? 탄소 섬유 붉은 실? 에이~ 구라일 거야.. 그 언니 악마인데.. 악마는 원래 구라를 잘 치니까..
도진: 응? 서큐씨가 악마라고?
페퍼: 딸꾹! 아 몰랐구나~(혀꼬임) 아 맞다! 언니가 말하지 말라고.. 딸꾹! 나한테 쉿! 이랬었는데.. 캬캬캬
도진: 벌써 취했냐? 도대체 무슨 소리야? 에휴~
페퍼: 야야~ 2차는 내가 쏜다! 맥주 먹으라 가자~
도진: 니가 무슨 돈이 있어서??
페퍼: 우리 부대에서 드디어 인간 세상 돈으로 환전해서 내 통장에 꽂아줬어. 캬캬캬 내가 인간 세상에서 활동하다 보니까 뭐 그렇게 해주더라구~
도진: 오올~ 그럼 페 대위가 나한테 처음으로 쏘는 거야?
페퍼: 그럼! 이 누나가 화끈하게 쏜다!
도진: 누나는 개뿔... 나보다 4살이나 어린 게... 일단 나가자. 일어날 때 조심해. 너 많이 취했어.
페퍼: 군인은 안 취하지 말입니다. 캬캬캬 딸꾹!
하지만 페퍼는 비틀거리면서 넘어질 뻔 했고, 도진이 잡아줘서 넘어지지는 않았다.
페퍼: 어이쿠! 내가 실수했네.. 도진, 암 쏘리~
그렇게 나가서 페퍼는 갑자기 도진의 옆에 착 붙더니 도진에게 팔짱을 끼었다.
도진: 응? 똑바로 걷기 힘드니?
페퍼: 왜 요즘따라 말투가 다정해진 거야? 딸꾹! 자꾸 그러지 말어~ 나 오해해.
도진: 에휴~ 친절해도 지랄~ 불친절해도 지랄~ 에휴~ 말을 말자.
페퍼: 케헤헤헤~ 그게 내 매력이라구!
도진: 매력은 얼어죽을... 아~ 매력이 맞긴 맞네. '매'를 버는 '힘(力)'... 매력!
그렇게 둘은 세계 맥주 전문점으로 가서 페퍼는 호가든, 도진은 레페 브라운을 시켜서 홀짝홀짝 마셨다.
페퍼: 이 집에는 매운 안주 없나?
도진: 여긴 그런 거 없겠지.
페퍼: (알바생을 부르며) 저기요! 여기엔 매운 안주 없나요?
알바생: 아! 있습니다. 황태구이가 있는데요. 황태 자체는 안 매운데 찍어먹는 소스가 매운 것이 있거든요. 하바네로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서 간장 넣은 다음, 마요네스와 캡사이신을 풀어 섞은 소스인데, 진짜 매워요.
페퍼: ...황태는 됐구 소스만 주시면 안 되요?
알바생: 네?? 아..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은데...
도진: 아! 그냥 황태구이랑 소스 같이 주세요. 근데 소스는 좀 많이 주세요. 얘가 매운 음식 매니아라서요. 하하
어쨌든 그렇게 맥주를 마시다가 페퍼가 말을 했다.
페퍼: 야! 도진! 너 솔직히 나 좋아해?
도진: 뭔 갑자기 앞 뒤 맥락도 없이 이상한 소리야? (사실 도진의 가슴은 콩닥콩닥)
페퍼: 딸꾹! 그게 사람.. 아니 요정.. 아니 뭐 어쨌든 사람 심리가 참 이상하다~ 원래 너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너 사실은 걔 좋아해."라고 말하면 그게 일종의 가스라이팅 같은 건지...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애.
도진: 그래서.. 뭘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페퍼: 흠... 고추 요정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지! 누군가를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키스를 해보라! 그래서 가슴이 뛰는 좋아하는 것이고, 아니면 말고~ 케헤헤
도진: 응? 뭐 좀 이상한데??? 그리고 그런 말은 나도 어디선가 삼류 소설 같은데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갑자기 키스라니??
페퍼: (갑자기 근엄한 표정과 목소리로) 고추요정국 특공단 대위 페퍼! 군인은 무조건 직진이다!
그 말이 마쳐짐과 동시에 페퍼는 도진의 뒷덜미를 확 잡아채고는 키스를 갈겨버렸다.
도진: 읍!! (입이 막혀서 말을 잘 못함) 붜봐부뭐마? (뭐하는 거야?)
하지만 페퍼의 키스는 뜨겁고 매콤했다.. 그게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매콤했다. 페퍼가 매운 소스를 하도 많이 먹어서;;;
그리고 페퍼는 도진의 입술에서 입을 떼고 손을 도진의 심장에 가져다댔다.
페퍼: 너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어! 너 진짜 나 좋아하는구나?
도진: 아니.. 갑자기 매운 기운이 입안에 확 들어와...
페퍼: (이미 페퍼는 도진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 그래.. 니 마음 확인했다. 사실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애. 자꾸 하루종일 니 생각만 나!
그리고 페퍼는 제 2차 키스를 날렸다.
도진: 읍!! 창깐! 마조하자.. (잠깐! 말 좀 하자)
하지만 페퍼의 제 2차 키스는 길게 갔고.. 도진도 이상하게 진짜로 페퍼에게 서서히 젖어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페퍼 정도면 꽤 예쁘다. 전투 계급이니 뭐니 해도 요정은 요정이다. 요정 유전자 어디 가겠나? 평소 애가 워낙 안 꾸미고 다녀서 그렇지, 꾸미면 진짜 예쁜 건 사실이다. 경복궁에서 한복 입은 페퍼를 보고 완전 심쿵한 도진이었는데... 긴 머리.. 초롱초롱한 눈동자, 약간은 인디오 느낌의 이국적인 얼굴.. 성격이 말괄량이라서 그렇지 사실 착하기는 진짜 착하다. 군인이라 그런지 의리도 있다. 아마 생활력도 강할 것 같다.
사실... 도진에게는 집안 일만 안 해주는 우렁각시가 페퍼라고도 할 수 있다.
도진: (마음 속으로) 그래.. 페퍼가 어쩌면 나의 고추각시일 수도 있어.
페퍼의 길고 긴 키스가 끝났다. 페퍼는 똑바로 도진의 눈을 응시했다. 그 눈빛은 어떤 대답의 기다림이었다. 초롱초롱 빛나지만 무언가를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기다림..
도진이 입을 열었다.
도진: 페퍼야. 우리 진짜 진지하게 시작해볼래?
페퍼는 기다렸다는 듯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짧지만 단호한 한 마디...
페퍼: 응!
-다음 편 계속~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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