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라믄 안되지. 안된다꼬~"
"머~ 그랄 수도 있지. 너무 깐깐한 거 아이가?(아니냐?)"
손님들이 치킨으로 힐링하는 푸닭커리에서 동네 교회에서 단체로 나오신 것 같은 손님들이 서로 어떤 이야기로 살짝 논쟁이 생긴 것 같다.
처음에는 나리도 현식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많거니와, 배달주문까지 처리해야 되었기 때문에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목소리들이 커지고 말투도 사나워지고 있어서 나리가 먼저 알아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치킨 먹는 게 어딨노? 으이? 하나님이 그카라 카더나?"
"아, 배고파서 깜빡 쫌 했다 아이가? 하나님은 사랑이라매? 그 정도는 용서하실끼야."
"머라카노?(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회개해라! 퍼뜩!"
신도 한 분이 치킨 먹기 전 기도를 하려는데 먼저 냉큼 한 입 맛 보신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비신도인 나리 입장에서는 별 대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저 분들은 너무 독실하게 믿으시는지 중차대한 일인 것 같았다. 사람은 이렇게 입장에 따라서 동일 사건인데도 거기에 부여하는 가치가 천차만별인 법이다.
이제는 현식도 그 신도분들이 앉은 테이블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현식도 믿는 종교가 딱히 없었다. 스스로 밥 먹기 전에 나름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희생된 식재료들과 농부, 목축업자, 도살업자, 비료 생산 공장 임직원 일동과 식품 가공 회사 임직원 일동 및 유통업자, 그리고 햇님, 물님, 땅님, 달님, 별님, 산소님, 이산화탄소님 등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이지만 하긴 했다. 하지만 일일이 기도를 챙기지는 않았다. 여튼 우리가 먹는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수많은 희생과 노고가 있음은 자각하고 있는 현식이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직업의 본질은 타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사이에서 얻는 이윤이야 정당한 대가이고 말이다.
심지어 사기꾼조차도 '과욕을 부리면 뒷통수 한 대 얻어맞는다.'라는 교훈을 사회에 가르쳐주지 않는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뒷통수가 너무 아프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여튼 현식과 나리는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하고 방관하다가 다른 테이블 손님들 인상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나섰다.
사장인 현식이 먼저 나섰다.
"손님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불편하실 수 있어서요. 조금 목소리 낮춰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렇습니꺼? 우리 목소리가 마이 컸지예? 죄송합니데이~ 근데 사장님요. 기도하기 전에 먼저 밥 묵는 기 가당키나 한교?(합니까?)"
신도분 한 분이 사과를 하는 동시에 다시 논쟁에 재점화를 하신다. 이런~~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끝을 낼 줄 모르는 사람, 자기 의견이 맞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전까지는 그만 둘 줄 모르는 사람..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의 참뜻을 모르는 사람.. 논쟁에서 이겨야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라 착각하는 사람,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을 달 때도 자기가 꼭 마지막 댓글을 달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등등...
하지만 세상 사람들도 멍청이가 아니라서, 아무나 막 존경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포용할 줄 아는 아량이 크고 넓은 사람을 존경하지, 자잘한 논쟁에서까지 이겨먹으려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여튼 이걸 어찌 해결해야 하나... 현식이 고민하고 있는데, 나리가 끼어들었다.
"손님들, 이런 일화가 있었습니다.
어느 수도승이 수도원장에게 질문했답니다.
[기도할 때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라고 묻자 수도원장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그건 신성모독이야!]
라면서 버럭 화를 냈답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수도승이 다시 질문했다고 합니다.
[담배를 피는 도중에 기도해도 됩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수도원장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답니다.
[당연하지. 하느님은 언제든 우리 기도를 들어주신다네.]
이렇게 약간만 관점을 바꾸고 발상을 전환하면, 똑같은 상황인데도 정답이 되기도 오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특별히 기도하고 치킨 먹는 날이 아니라, 치킨을 먹으면서 기도하는 날도 되어보라고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날이라 생각해보시는 건 어떠실지요?"
나리가 이렇게 말하자, 교회 신도분들이 잠시 생각하더니 일리가 있는 말인지라
"오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아하~ 그렇구나~"
"아가씨가 억수로(매우, 굉장히) 똑똑하데이~ 뉘집 딸내미고? 호호홋"
등등 나리를 칭찬하면서 표정들이 풀어지셨다.
현식도 나리를 다시 보았다. 그저 한참 어리게만 봤는데 이렇게 사려 깊은 면도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 작은 소동이 마무리 된 후 현식은 나리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여보야가 그렇게 사려 깊은 줄 몰랐어. 나보다 더 어른스럽던데~, 오올~ 누나라고 불러줄까? 크킄"
그러자 나리가 현식을 째려보면서 어금니 꽉 깨물고 말했다.
"즈기여. 김현식 으르신~ 알츠하이머 오셨으여? 쯧쯧.. 큰 일이야. 큰 일... 한 집안의 가장이 효미보다 더 철딱서니가 없어서야.. 쯧쯧쯧"
이라고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저었다.
현식은 무안해져서 자기 뒷통수를 긁적긁적 긁었다.
"짤랑~!"
그 때 푸닭커리 정문의 도어벨이 울리면서 효미가 들어왔다. 얼마 전에 집으로 데려온 강아지 다행이를 품에 안고 말이다.
효미의 이름만 꺼냈을 뿐인데, 효미가 소환되다니 역시 말의 힘은 대단한가보다.
어쨌든 효미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다행이를 바라보았다.
"아빠, 언니~ 다행이가 자꾸 설사해.. 으앙~ 어떡해?"
아직 생후 2~3달 정도 밖에 안된 다행이가 너무 설사를 해서인지 강아지인데도 기진맥진한 표정이 읽힐 정도였다.
나리가 깜짝 놀라며
"어머~ 얘 파보나 코로나 같은 장염 걸린 거 아냐? 그럼 큰 일인데... 자갸~ 나 효미랑 얼른 동물병원 갔다올게. 잠시만 좀 부탁해. 얼른 다녀올게."
라고 말하면서 앞치마를 벗었다.
현식도 놀라면서
"응~ 그래. 얼른 다녀와 봐. 지갑도 챙겨가지? 현금 많이 필요해? 줄까?"
라고 말했고 나리는
"괜찮아. 현금도 있고 카드도 있어. 효미야. 얼른 가자. 언니가 동네 돌아다니다가 이 근처에 동물병원 봐둔 곳이 있어."
라고 하면서 효미를 이끌고 동물병원으로 다행이와 함께 가게를 나갔다.
나가면서 효미가 눈물이 그렁그한 얼굴로
"좀만 참아. 다행아. 빨리 병원 가자. 좀만 참아~"
라고 말하며 다행이가 춥지 말라고 꼭 끌어안았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축복과 행복이 깃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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