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닭커리가 간만에 쉬는 날 아침, 현식과 나리, 효미는 간단하게 짐을 꾸려서 이 지역에 있는 제법 큰 산인 구공산으로 향했다. 험한 등산 코스는 없기에 그냥 평소 산책 가는 복장으로 가볍게 준비했었던 것이다. 효미는 이번에도 아침부터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디 놀러가는 날엔 꼭 아침부터 즐거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텐션업 시키는 습관이 효미에게 생겼다.
"나나나나나 나나나~ 우리만들의 짧은 여행~♪ 시간아~ 좀 더 천천히~♬"
이런 노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돌 노래는 전혀 모르는 현식과는 달리 나리는 효미와 같이 노래를 따라불려주면서 효미를 더욱 신나게 했다.
뻘쭘히 있기만 하는 현식에게 나리가
"여보야. 여보야도 좀 최신곡도 찾아 듣고 그래라. 내가 서양수박에서 최신곡 괜찮은 거 몇 개 다운받아줄까?"
라고 말했다. 그러자 현식이
"괜찮은데..."
라고 했다. 그러자 나리가 다운받는 게 괜찮다는 줄 알고 식탁에 놓여진 현식의 폰을 집어들어 서양수박 앱을 열었다.
그러자 현식이
"너 뭐해?"
라고 물었다.
"괜찮다매?"
"아.. 아니~ 다운 안 받아도 괜찮다구.."
"칫~! 난 또... 갑자기 듣고 싶으면 말해. 내가 최신곡 쫙쫙 뽑아줄게."
나리가 입술은 삐죽 내밀면서 대답했다.
"괜찮다."라는 이 표현은 참 애매한 경우가 많다. 승락, 긍정의 의미인 건지, 거절의 의미인 건지... 하지만 그게 또 괜찮다라는 말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여차저차 해서 이들 가족은 현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구공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구공산은 살아 생전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은희의 영혼도 호기심에 이들의 차에 슬쩍 동승하여 따라갔다.
산으로 향하는 도로 주변에 산채 나물 비빔밤 식당, 고기집, 백숙집 등등 음식점들이 많았다. 불경기라면서 음식점들에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이들은 더 이상 자동차로 오를 수 없는 곳까지 가서 주차장에 주차한 다음 걸어서 계속 올라갔다. 돌계단이 있긴 해서 오르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계단의 경사가 제법 급해서 어린 효미는 빨리 지쳤다.
"헥헥~ 아빠, 좀 천천히 가자.. 나 다리가 짧아서... 헥헥"
"어구~ 우리 효미, 힘들구나. 알았어. 그래 천천히 가자."
"효미야. 언니가 시원한 물 줄까? 목 마르지?"
현식과 나리는 효미를 챙기면서 천천히 효미의 걸음에 맞춰 산을 올랐다.
비록 시간은 좀 지체될 지는 몰라도 어차피 엄청 오래 올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주변 경치나 나무와 바위 사이로 가끔씩 보이는 산 아래 마을과 시가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좋기만 했다.
그렇게 천천히 가다보니 이 산에서 제일 높은 정상은 아니지만, 꼭대기의 한 부분까지 올라갔다. 거기는 박사 바위라고 불리는 돌부처가 있었는데, 머리에 꼭 박사 모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박사 모자의 상징성 때문일까? 수능철만 되면 여기는 자녀들의 고득점을 바라는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디 가서 빌고 기도한다고 공부 안 한 자식이 고득점을 받을 리는 없건만, 자식이 모르는 문제를 찍어서라도 맞추기를 바라는 부모의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물론 기도한다고 해서 찍어서 맞출 확률 역시 증가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그거라도 해야지 안심이 되는 것이다. 오랜 옛날 먼 길을 떠난 자식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도록 매일 새벽 정화수를 떠다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기도를 했던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가 마치 DNA처럼 전해져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어디 딱히 빌어야 할 것도 없는 이들에게 박사 바위는 그저 잘 만든 석조 조각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현식과 나리는 박사 바위를 쳐다보면서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효미가 뭘 발견했는지 어느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어~! 저기 뭐라고 적혀 있다!"
라고 말하며, 안내문이 적혀 있는 곳 앞으로 종종걸음 달려가서 안내를 읽었다. 그러더니 효미는 다시 현식과 나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저기에 적혀 있는 거 봤는데, 정성껏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대. 나는 소원 빌래."
라고 말했다.
나리와 현식이 그런 효미가 귀여워서 뭘 빌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효미가
"기다려 봐. 지금 두 손 모으고 빌거야."
라고 말하며 박사 바위가 있는 쪽을 향해 쳐다보더니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눈을 감고는 말했다.
"아빠랑 나리 언니랑 저랑 늘 행복하고 건강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돌아가신 울 엄마 좋은 곳에 가게 해주세요. 이거 소원 두 개 아니예요. 한 세트예요. 햄버거 가게 가면 세트 메뉴 있는 거 아시죠? 그것처럼 그냥 한 세트예요. 두 개 아니니까 소원 들어주세요."
라고 효미는 소원을 박사 바위에게 말했다.
나리와 현식은 효미의 소원을 듣고 깔깔깔 웃었다. 한 세트라니.. ㅋㅋㅋㅋㅋ
"어이구~ 효미, 머리 좋네. 소원을 한 세트로 빌고.. 그래. 엄마도 진짜 좋은 곳에 갈 거야."
라고 현식은 효미에게 말하면서 효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리도 그런 귀여운 효미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자기 친딸은 아니지만 나리는 푸닭커리에서 알바로 일할 때부터 효미랑 굉장히 친했다. 나리도 똑똑하면서도 밝고 사교성 많은 효미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의붓 엄마가 된 지금도 효미를 정말 자기 피붙이처럼 생각하고 아꼈다. 효미가 자기를 아직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완전히 습관이 될까봐 그게 마음에 좀 걸렸지만 언젠가는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다지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들 가족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현식의 전처이자 효미의 친엄마인 은희의 영혼도 자신이 좋은 곳에 가길 바라며 기도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말 효미를 꼭 껴안고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조금 슬플 따름이었다.
박사 바위 돌부처가 마치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양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날의 박사 바위 주변의 하늘은 유난히도 파랗게 빛이 났다.
그리고 이들은 내려와서 원래 목적(?)이었던 오리 백숙집으로 향했다. 거기엔 오리 훈제 구이도 있어서 백숙과 훈제를 같이 시켜서 먹었다. 물론 너무 많아서 절반을 겨우 먹었지만, 훈제는 포장해 와서 집에서 먹기로 했다. 오리 백숙집에서 먹다 남은 훈제를 포장하는 동안 효미가 나리와 현식에게 말했다.
"근데, 우리 가게도 새(鳥) 고기 파는데 여기도 새(鳥) 고기 집이야. 아마 우린 새랑 친한 집안인가 봐.. 키킥"
나리가 효미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우리는 새랑 친한가봐. 우리 효미도 커서 어른 되면 새처럼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돼~ 알았지?"
"응! 알았어. 언니~"
오늘 이들 가족의 주위에는 유난히 파랑새의 행복한 기운이 휘감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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