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가을 어느 토요일 오전, 효미네는 어디로 떠날 채비를 했다. 효미네도 가만 보면 여행가는 거 참 좋아하는 가족이다. 이번에는 커피숍 핌 머그레의 서진네 가족과 동반으로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이 동네에서 가까운 바다인 포항 구경을 가기로 했다. 이름하여 1박 2일 해돋이 여행이었다. 새해는 아니지만, 이 동네로 이사와서 새마음 새뜻으로 기운차게 새출발하자는 의미에서 서진이 현식에게 제안한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서진도 간만에 바다 구경도 가고, 포항의 명물 과메기도 먹고 싶기도 한 건 덤이었다. ㅎ
"삐리리리링~" 현식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네! 사장님. 저희 가게 앞이라고요? 네~ 저희도 방금 준비가 끝났거든요. 네~ 지금 나갈게요."
"여보야. 커피 사장님 오셨대?"
"응. 지금 가게 앞이래... 다들 준비 끝났지? 놓고 가는 건 없고? (나리, 효미 : 옛썰~!) 오키~ 좋았어. 나가자."
효미는 강아지 다행이도 잊지 않고 품에 안으면서 집을 나셨다.
가게 앞에는 까만색 SUV가 한 대 있었다. 차 창이 스르르 내려지고 핌 머그레의 사장인 서진이 얼굴을 내밀었다.
"허허허~ 안녕하십니꺼~ 현식 행님~ (얼굴 액면가는 서진이 더 위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진이 현식보다 한 3살정도 어리다.)준비 다 끝나셨으예?"
"허허헛, 서진씨도 굿모닝입니다! 준비는 끝났고, 이제 출발만 하면 됩니다."
현식은 서진에게서 문자로 받은 도착할 숙박지의 주소를 네비에다가 찍고 출발했다. 서진도 역시 출발했다. 이렇게 1시간 30분 좀 넘게 달려서 현식과 서진은 포항에 도착했다. 우선 숙박하기로 한 곳에 짐을 풀고 마침 점심 때가 얼추 되어서 배를 채우기 위해서 포항에서 잘 한다는 물회집으로 향했다. 현식도 나리도 물회를 좋아했지만, 효미는 잘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효미는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효미는 처음 먹어보는 물회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게 있는 줄 몰랐다면서 한그릇 뚝딱 비웠다. 다 먹고 나서야 차 안에 있는 다행이 생각이 났지만, 이미 물회는 전부 자기 뱃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효미가 아쉬워하자 나리가
"효미야. 언니가 두 조각 안먹고 꼬불쳐둔 게 있어. 이거 주자."
라면서 작은 생선회 두 조각을 물에 씻어서 냅킨에 올려었다.
효미는 작은 목소리로 나리에게 속삭이면서
"앗싸~ 언니 최고~"
라고 말했다.
우선 두 가족은 배를 채우고 나서, 영일만에 있는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지금은 날이 쌀쌀해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바닷가 모래를 밟으며 파도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도 영혼도 마음도 모두 치유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효미와 호준이는 다행이와 함께 모래사장에서 뛰어다니면서 함께 놀았고, 예쁜 조개껍질도 주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효미는 조개껍질을 줍다가 예전 현식과 나리의 하와이 신혼여행 때 주웠던 바다 유리가 생각났다. 아쿠아블루 색깔의 그 보석같던 유리를 어디다 놔뒀지? 라고 효미는 한참 생각했다. 자기 방 책상 서랍이었나? 양말 서랍 안에 뒀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호준이
"효미야. 내가 소라껍질 주었는데, 예쁘지?"
라고 제법 예쁘게 생긴 소라껍질을 효미 앞에 내밀었다.
효미는 바다 유리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예쁜 소라껍질에 집중하였다.
"응~ 이거 이쁘다. 어디서 주었어?"
라고 효미가 물어보자 호준이
"저~기서 주웠는데, 예쁜 건 이거 하나 밖에 없더라."
라고 말해면서 그 뒤에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데 멈칫멈칫 거렸다.
효미가
'이 오빠 왜 저래? 똥 마려운가?'
라고 생각하면서 호준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효미랑 눈이 마주친 호준이가 황급히 눈을 피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효미에게 말했다.
"너.. 너 가져."
라면서 소라껍질을 효미에게 내밀었다. 딱 봐도 츤데레의 기운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장면이다.
효미가
"정말? 진짜지? 나 가진다. 앗싸~! 득템!"
이라면서 게임하다가 배웠는지 '득템'을 외치면서 소라껍질을 냉큼 가져갔다.
효미는 신기한 듯 소라껍질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호준이가 말했다.
"이거 귀에다 갖다대면 파도 소리 들려."
효미가 호준의 말대로 귀에 가져가자
"휘이잉~"
이렇게 바람 소리 같기도, 파도 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다.
"어! 진짜네. 고마워. 호준이 오빠."
라고 생긋 웃으면서 호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고는
"아빠! 언니! 소라껍질에서 소리 나!"
라면서 호준이가 준 소라껍질을 가지고 현식과 나리에게로 뛰어갔다.
자리에 남겨진 호준이는 작은 소리로
"오... 빠...."
라면서 효미의 말을 따라했다. 바다를 한참 쳐다보고 있는 아들 호준이 의아하여 수현이 다가가서 물었다.
"호준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얼굴은 왜 빨개? 열 나?"
라면서 호준의 이마에 손을 짚어봤으나 열은 나지 않았다. 그 때 호준이가 번뜩 정신 차리면서
"아냐~ 엄마. 나 괜찮아."
라면서 말했다. 그 때 수현은 보았다. 호준이의 표정과 말투가 불일치하는 것을...
입으로는 괜찮다고는 하는데, 입술 끝은 씨익 올라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러고는 뭔가 눈치 챈 듯이 피식 웃으면서
"그래.. 괜찮은 것 같네. 저기 가서 효미랑 강아지랑 같이 놀아."
라며 호준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호준이는 마치 자동 프로그램을 한 것처럼 다시 효미와 다행이가 있는 곳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노는 사이에, 어른들은 여태 살아온 이야기, 현식이 서울에 있다가 여기로 내려오게 된 사연(이 대목에서 서진과 수현은 그 건물주 아들 이야기에 자기들이 더 분노하는 것 같았다. 자기들도 예전에 비슷했던 경험이 있었다면서 백번 공감한단다.)
그리고 나리가 수현에게 물었다.
"언니는 이 곳 사람이 아닌 것 같네요. 사투리도 안 쓰시고..."
"나는 고향이 강원도 춘천이예요. 그래서 사투리가 없어요. 춘천이 강원도인데 "뭐뭐 했드래요~" 이런 강원도 사투리는 안쓰거든요. 경기도에 가까워서 그런가? 내가 처녀 때 부산 해운대에 친구들이랑 피서 갔는데, 거기서 이 사람이랑 이 사람 친구들이 우리 일행을 꼬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3대3 숫자도 맞길래. 같이 맥주 마시면서 놀았는데, 이 사람 그 때 엄청 코믹했거든요. 나 그 때 웃겨서 자지려질 뻔 했잖아요. 그러다가 그 때 눈 맞은 거죠.. 하핫"
수현이 옛추억을 떠올리면서 말을 했다. 그러자 서진도 말을 덧붙였다.
"그 때, 난 이 사람 친구들은 안중에 없고, 딱 이 사람한테 꽂힌 기라예. 그래서 이 사람한테 잘 보일라고 있는 드립, 없는 드립 다 쳤다 아임니꺼?(아니겠어요?) 크~ 그 때 떠올리니까 내가 생각해도 웃기네. 내한테서 우째 그런 개그가 나왔는지.."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덧 저녁 때가 되어서 포항의 명물 과메기를 먹으러 시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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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Hosobi도 과메기를 좋아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지만, 옛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본인도 꽁치 과메기 밖에 못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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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을 잘 했는지 생선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으면서 쫀득쫀득한 쫄깃함이 살아있었다. 효미와 호준이 같은 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그리고 이런 훌륭한 음식을 먹는데 술이 빠지면 되겠는가? 그래서 소주도 시켜서 어른 넷은 걸음이 비틀거릴 정도로 기분 좋게 마셨다. 그리고 숙박하는 곳으로 돌아가 꿈도 안 꾸고 푹 잘 잤다. 그 와중에도 현식이 아침 일찍 알람을 맞춰둔 건 장한 일이었다.
다음 날 매우 이른 아침이 되어서 알람이 울렸고, 현식은 자고 있는 어른들을 깨웠다. 시간을 보니 씻고 준비해서 해돋이들 보기로 한 호미곶에 도착하면 해가 떠오를 때쯤이 될 것 같았다. 아침은 해돋이 후에 먹기로 하고, 일단 얼른 씻고 아이들도 깨웠다. 그리고 자동차를 몰고 막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가니, 해가 이제 곧 떠오르려는 듯 바다가 있는 동쪽 하늘이 서서히 빨게 지고 있었다.
이들은 얼른 주차하여서 해맞이 광장에 있는 상생의 손이라는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오늘이 새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다지 않지는 않은 듯 했다. 그리고 주차할 때 서진이 자동차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내나 싶었는데, 현식과 나리가 정말 오랜만에 본 DSLR 이었다. 서진은 얼른 카메라 위치를 잡고 삼각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앞에 망원렌즈 같은 것도 달아서 이것저것 촛점도 맞주고 밝기 조정도 하며 촬영할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이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서진은 상생의 손이 배경에 보이게 사람들을 줄 세운 후 리모컨을 가지고 같이 줄을 섰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치즈~' 라고 하면서 각자 포즈를 잡고 Take a picture를 하였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나리와 현식이 상생의 손의 왼손을 가까이서 구경하러 갔다. 상생의 손은 두 개인데 오른손은 바다에 있어서 육지에 있는 왼손으로 갔던 것이다.
나리와 현식은 누군가 왼손 팔목 아래에 화이트로 낙서한 것을 보았다.
현식이 혀를 끌끌 차면서
"누가~ 이런 곳에 낙서를.. 쯧쯧쯧"
이라고 말했고 나리도
"그러게.. 낙서는 공책에 해야지~"
라고 동조했다. 그리고 둘은 낙서 내용은 그래도 궁금하여서 읽어보았다.
"사람의 따스하고 밝은 근본 마음은 저 태양과 같으니, 그 빛은 온 세계를 덮을 수 있고 그 힘은 행성들을 움직일 수 있다."
"말은 좋은 말이네.. 하핫"
라고 현식이 말했다. 그리고 그 사이 태양은 조금 더 높이 떠올라서 세상을 더욱 환하게 비추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축복과 행복이 깃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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