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치킨 넘버원 우승 이후로 푸닭커리의 매출은 당연히 더더욱 상승하였다. 이제는 알바도 몇 명 두면서 경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식에게 가게 건물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마 가게 임대료 때문에 전화 온 것 같았다. 푸닭커리 장사가 잘 되니 보나마나 임대료 올려달라고 할 것이라고 현식은 예상했다. 어느 정도는 현식도 각오하고 있었고, 또 부담할 의향도 있었다. 그래서 아직 가게 문 오픈 하기 전에 건물주가 푸닭커리로 찾아와서 서로 만나 이야기 하기로 했다.
"짤랑~!"
하고 가게문이 열렸다.
명품 양복을 빼입은 어느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현식은 누군지 몰랐다. 건물주라고 예상했는데, 현식이 아는 건물주는 인자하게 생긴 할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네~ 저는 여기 건물주 고성만입니다."
"어? 건물주가 바뀌셨나봐요? 원래 어르신이었는데..."
"아, 그 분은 제 아버지신데, 얼마 전 돌아가시면서 제가 이 건물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셨다고요? 이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아무쪼록 힘내십쇼."
"아.. 네.. 뭐..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임대료 문제 때문에 왔습니다만..."
"네, 그렇군요. 저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목 좋은 위치 덕분 인지 저희 가게가 영업이 잘 되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허"
"네.. 흠.. 근데, 제 아버지께서 운영하셨던 건물들 임대료 자료를 봤는데 너무 낮게 책정이 되어있더군요. 더군다가 선생님도 아까 말씀하셨지만 여기 목도 좋은데 비해 너무 낮아요. 그래서 제가 합리적인 액수를... "
현식이 중간에 말을 자르며 들어갔다. 말하는 뽄새가 뭔가 기분 나빴다. 대놓고 '목 좋은데 비해'라니... 사실 푸닭커리의 현재 목이 나쁘진 않다만 엄청 좋은 것도 아니었다. 사실 현식의 실력이 푸닭커리 성장의 원동력이지 절대 가게 위치 같은 게 성장 원인의 1순위가 아니었다.
"네~! 그래서 얼마쯤 인상하는 걸 원하시는지..."
"제가 합리적으로 생각해 본 결과 현재의 3배는 받아야겠습니다."
현식은 깜짝 놀랐다. 2배도 미친 듯이 많은데 3배라니... 순간 이 인간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에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싶기도 했다.
"네??? 3배라고요? 너무 지나친 것 같은데요. 예전에 아버님께서 가지고 계신 건물들 임대료를 그리 높게 책정 안하신 건... 저희 가게에 가끔 오실 때마다 말씀하셨어요..
'나는 임대료 욕심이 그렇게 없어. 대신 내 건물에 입주해 있는 사장님들이 자기 꿈을 펼치면서 자기 사업 확장하는 걸 보는 게 더 없이 기분 좋다네. 내가 사장님들한테 다른 지원은 할 수 없지만, 절감된 임대료만큼 사장님들이 더욱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절감된 임대료를 그냥 아무 의미없이 펑펑 쓰는 사장님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야 어차피 여기보다 더 임대료 낮은 가게로 들어가도 망할 사람들이고, 푸닭커리 사장님 같이 성실한 분들은 더더욱 연구하고 새로운 걸 시도해서 성장하겠지.'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아버님이십니다. 그 분의 그런 깊은 뜻이 있었어요. 낮은 임대료는요... 그런데 갑자기 3배를 인상하자니, 말이 됩니까? 다른 상인분들도 인정 못할 걸요?"
현식은 황당하고 화도 나서 언성을 높이면서 말했다. 아들이라는 이 인간은 아버지와는 격이 다른 인간이다. 아버지가 이타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분이시라면, 이 인간은 자기 눈 앞의 이익 밖에 모르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인간이다.
이름이 고성만이라더니 진짜 '고성만' 유발하는 고성 유발자였던 것인가? 어쨌든 그 고성만이라는 인간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황당하실지는 몰라도,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여기 임대료가 다른 주변 상가 건물들에 비해 굉장히 저렴한 건 사실 아닙니까? 건물주인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저의 합리적 이익을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합리적' 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인간이다. 원래 경제학에서는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기적이라는 말과 동일하다라는 것을 현식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기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일반적인 이기적인 것의 수준을 넘어서 근시안적이지 않은가?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챙겨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마치 내일의 이익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
그런 근시안적인 인간들이 큰 성공을 못하거나 결국 망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세상은 혼자만 잘나서 성공할 수 없다. 저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멋진 바위가 그 위치, 그 높이에 있을 수 있는가? 바로 그 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그 밑에 있는 거대한 흙더미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흙더미를 다 빼내면 그 바위 혼자 그 높이 있을 수 있는가? 바로 바닥으로 추락하겠지. 자기 성공을 직간접적으로 받치고 있는 수많은 인연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들을 위한 행동을 하지 못하면 추락은 정해진 수순이다. 자기가 더 높은 위치로 가기 위해서는 한가지 방법뿐이다. 자기를 받쳐주고 있는 흙더미를 늘려라. 즉, 자기를 좋아해주고 따라주고 응원해주고 도와주는 고마운 이들을 더더욱 모으고 모으라. 그리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의리를 갚아라.
어쨌든 오늘 협상의 결과는 '결렬'이었다. 고성만은 자기 명함을 식탁 위에 둔 뒤 며칠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고 끝이 났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리도 고성만이 나간 후에 현식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야. 저거 미친 거 아냐? 우리 가게 잘 나가다가 왜 이러는건데? 아.. 진짜 갑질 빡치네.."
현식은 한숨을 쉬면서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후~"
현식은 밖에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폈다. 평소 잘 피우지는 않는데, 이건 진짜 담배가 당기는 순간이었다. 현식은 자기 입에서 내뿜어지고 있는 담배 연기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날려보냈다. 지금 돈을 모아서 가게 확장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장이고 뭐고 지금 있는 가게에서도 나가게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속만 부글부글 끓인다고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그 뒤로도 현식은 몇 번 전화로 협상을 시도하였다. 1.5배 이상은 못 주겠다. 1~2년 유예기간은 줄 수 없냐.. 등등 여러 제안을 해봤지만, 고성만은 양보나 타협이라는 걸 모르는 인간이었다. 오히려 지금 푸닭커리가 빠지면 높은 임대료에도 들어올 상점들이 많다고 으름장이었다.
현식은 결단을 내렸다. 너무 아쉽긴 했지만 현재 가게에서 빠지기로 말이다. 사실 현식의 실력이면 전국 어딜 가서도 성공할 자신은 있었다. 그래서 원래 현식이 어릴 때까지 살았던 고향이기도 했고 친척분들도 살고 계신 경북 XX시로 내려가기로 했다. 친척분들과도 이미 연락을 해 두었고, XX시로 내려가서 새로 입주할 가게 위치도 확보해두었다. 나리도 자기 동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게 탐탁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늘 성실한 현식을 믿어보기로 했다. 옆에서 쭉 지켜봐 온 현식의 역량과 성품이라면 어딜 가서도 성공할 수 있고, 서울이야 다시 언제든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효미도 자기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슬펐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아직 어린애가 혼자 서울에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효미와 현식, 나리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날, 동네 주민들은 이 가족들에게 격려를 해주었다. 그만큼 현식이 이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그간 많이 쌓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리의 부모인 두만과 소영은 아쉽고 걱정되고 슬펐지만, 일부러 웃는 얼굴로 잘 내려가서 잘 살라고 응원하고 격려해주었다. 다만 효미의 친한 친구인 혜리는 가장 친한 친구인 효미가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효미에게 작별인사 하면서도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효미도 그런 혜리를 보면서 같이 울었다.
현식, 나리, 효미는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아.. 한 명.. 아니 하나의 존재가 더 있다. 은희의 영혼... 은희도 이들은 모르겠지만, 같이 따라간다. 여전히 은희는 이들이 불안하여, 특히 딸 효미가 불안하여서 아직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들에게 XX시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무서운 일? 재밌는 일? 신비로운 일? 감동적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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