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치킨 넘버원 ep.7
어제의 한국 시리즈 RG 트윈스 우승을 기분 좋게 음미하면서 현식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는 아직 나리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고, 침대에서 걸어나와 효미 방으로 가보니 아직 효미도 꿈나라에서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헤헤 웃으면서 코~ 자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TV를 최대한 볼륨을 줄여 켜서 스포츠 채널로 틀어 어제 하일라이트를 다시 감상해보았다. 다시 봐도 짜릿한 9회였다. 특히 5:4로 끝내기 안타가 터질 때와 슬라이딩할 때는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어제 경기를 감상하다가 이제 다시 현생으로 돌아와서 할 일을 해야겠다고 현식은 생각했다. 최치원(최강 치킨 넘버원) 재대결 신메뉴를 뭘로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매콤 카레 치킨 말고도 원래 자신 있었던 크림 치즈 치킨이나 된장 치킨으로 할까? 아니면 아예 새로운 메뉴로 선보일까.. 새로운 메뉴로 한다면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김말이 치킨? 꿔바로우 치킨? 삼각김밥형 치킨? 아구찜 치킨?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가 복잡해졌다.
물론 이 대결은 야구로 치면 올스타전 같은 거라서 꼭 최치원 승리에 연연할 필요는 없었지만, 최선은 다 하고 싶은 현식이었다.
현식은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서 믹스커피를 한 잔 맛있게 탔다. 나름 자기 비법이 있었는데 믹스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기 전 계피 가루를 아주 살짝 넣어먹는 것이었다. 이렇게 먹으면 시나몬(계피) 향이 솔솔 나는 것이 커피 맛을 더 새롭게 하였다. 그리고 계피가 혈액순환과 당뇨병 예방에도 좋다니 이런 방법으로 자주 해먹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시나몬 치킨도 만들어볼까?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아이디어 메뉴에 하나 추가하면서 수첩에 메모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다가 노트북을 켜고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의자에 앉아서 현식은 음악을 감상했다. 머리가 복잡할 땐 음악이 최고였다. 음악에는 마법같은 힘이 있어서 사람의 기분상태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더군다나 가성비도 엄청 좋아서 거의 비용도 들이지 않고도 심리를 조절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 현식은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 영화 Mo' better blues의 Mo' better blues, 데파페페의 Start, Pal@Pop의 Lover's delight, 영화 Love Affair에 나오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Piano Solo 같은 가사 없는 연주곡이 오늘 따라 당겨서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 슬슬 가사 있는 것도 듣고 싶어져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나왔던 When I fall in love를 듣고 있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현식도 자기계발서라면 많이 읽어서 심상화 같은 걸 많이 해봤다. 그런데 심상화에서 중요한 건 생생하게 느끼라는 건데, 어느 특정 장면을 그냥 생생하게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장면에서의 느낌과 감정이다. 이미지보다 감정과 느낌이 생생해야 한다. 진짜 에너지는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과 느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땐 감정과 느낌이 잘 안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현식은 그럴 때 써먹기 위하여 응용방법을 하나 고안해 낸 것이 있었다.
원래 그 감정, 느낌을 느끼기 위하여 심상화라는 것을 하는 거니까... 역으로 하면 어떨까... 라는 것이다.
우리가 미로찾기를 할 때 원래 입구 순서대로 하면 길이 안보이는 미로도 출구부터 거슬러올라가면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경우가 흔하다. 문제가 안 풀릴 때는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하는 역설적 방법은 매우 유용하다.
현식이 고안했다는 방법도 같은 것이다.
심상화 한 다음에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싶은 감정이나 느낌과 유사한 감정을 떠올리게 자기 상태를 고양시킨 다음에 심상화 하여 진짜 느끼고 싶은 감정과 느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식이 맛있는 메뉴를 개발하여 손님들의 칭찬을 받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하자.
그러면 그 이미지를 그리면서 그 때 느낄 감정과 느낌(대박이다~!, 감사합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 짜릿해~! 고구마 먹은 다음 사이다 마시는 느낌이야~!)을 만들어내는 게 원래 순서인데 이 느낌과 감정이 잘 안 나올 때, 먼저 저런 긍정적인 느낌과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음악을 먼저 듣고 따라부르거나 흥얼거리면서 춤을 추면서 자기 감정 상태를 먼저 고양시킨 후, 심상화를 하면 지금 현재 고양된 상태이기 때문에 긍정적 감정을 더 수월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순서야 바꿔도 결과가 같다면 똑같은 게 아닌가? 비커에 소금을 먼저 넣고 물을 넣으나, 물을 먼저 넣고 소금을 넣으나 결국 소금물인 건 똑같은 것이나 마찬가지 경우이다.
어쨌든 현식이 그렇게 눈을 지긋이 감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나리도 잠에서 깨었다. 깨어보니 옆자리에 현식이 없어서 어디 있나 하고 찾아보니 노트북 컴퓨터와 책이 많이 있는 방(이들 가족은 이 방을 서재가 아니라 PC방이라고 부른다.)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리는 문득 장난끼가 발동하여서 뒤에서 현식을 서프라이즈 하게 하려고 살금살금 아기 고양이처럼 다가갔다.
그리고 "허이~!"라고 하면서 현식의 등을 탁 쳤다.
현식은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한나리씨! 깜짝 놀랐잖아~ 커피 엎지를 뻔 했네."
"캬캬캬, 어이구~ 우리 자기 많이 놀랐쪄요?"
나리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현식이 귀엽다는 듯 짓궂은 표정으로 현식의 응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어허~ 어디 한참 큰 오빠뻘 남자 응딩이를...! 그리고 내가 너 대학교 대선배인 거 잊었어?"
이라고 현식이 말하자 나리가
"큰 오빠, 선배는 무슨... 솔직히 그냥 삼촌뻘이지. 나처럼 여보야 같은 아조씨 좋아해주는 여자 만난 거 행운으로 여기라규~♥"
라고 하면서 나리는 현식의 목에 팔을 두르고 애교를 부렸다.
현식이
"어이구~ 감사합니다~ 근데 When I fall in love 듣다가 내 Heart가 Ground에 Fall 할 뻔 했거든요~"
라고 말하면서 현식이 이번에는 나리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 모닝 키스를 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현식의 머리에 뭔가가 번뜩였다.
"나리야. 내가 방금 뭐라고 드립 쳤지? Fall 이라고 했지? 역시 나는 천잰가 봐~"
라며 나리의 허리에서 손을 풀고 말했다.
나리는 아직 효미도 자고 있는 이 마당에 분위기 좋다 말았다고 생각하면서 아쉬워 했지만, 현식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천재 드립이야? 굿 아이디어라도 떠올랐어?"
"그래, 음식을 어딘가에 떨어트려 먹는 요리가 있잖아. 퐁듀!"
나리가 의아해하면서 계속 물어봤다.
"근데? 그게 왜?"
"그러니까.. 또 그것도 있잖아. 탕수육. 특히 탕수육은 맨날 사람들이 부먹이 진리냐. 찍먹이 진리냐 가지고 논쟁하잖아. 근데 우리 양념 치킨류는 왜 부먹, 찍먹이 없는 거지? 늘 그냥 부먹 상태로 나오잖아. 그래서 양념을 부어 먹거나 찍어먹을 수 있게끔 고객들에 선택권을 주면 어떨까? 그러면 치킨 껍데기의 바삭함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양념에 바로 찍어서 껍데기가 아직 바삭할 때 먹을 수도 있잖아. "
"그러니까 양념을 따로 통에 담아서 부어먹고 싶은 사람은 부어먹고 찍어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찍어먹게 하자~ 그거야?"
"응! 그렇지~ 역시 똑똑해요. 한나리양~ 크크큭"
"지금 최치원 재대결 때문에 이런 아이디어 떠올린 것 같은데, 너무 약하지 않아? 그냥 양념치킨의 소스를 따로 주는 건.."
" 그렇지. 그래서 양념을 아주 특별하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양념을 튀김옷 입히기 전에 닭고기 자체에도 양념을 스며들게 해서 고기에도 양념이 완전 베여들게 하는 거지."
"특별한 양념? 그게 뭔데?"
"내가 오래 전부터 생각해 둔게 몇개 있어. 너비아니 치킨이나 아구찜 치킨, 그리고 좀 전에 번뜩 생각난 시나몬 치킨... 어때?"
"오올~ 아구찜~ 거기에서 확 끌리는데? 자갸~ 나 갑자기 아구찜이 땡겨~ 웁 우웁~"
나리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다.
현식이 깜짝 놀랐다.
"나리야. 왜 그래? 너.. 너 혹시... 혹시....?"
현식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나리가 큰 소리로 웃었다.
"캬하하하하하하. 낚였구만.. 뻥이야~ 크크큭. 아이고 배야~"
현식이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어쨌든 낮부터 최치원 재대결에 쓰일 신메뉴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원래 가게 일도 착실히 하였다. 물론 영업이 끝 난 후에도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봉사활동이 있는 주의 일요일엔 봉사활동 멤버들에게 그간 만들었던 메뉴들을 시식시켜 주면서 반응을 살피고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헛되이 흘리는 시간이 없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의미가 꽉 차있는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재대결 날짜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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