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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서&주민지 시리즈/장판 산장

장판 산장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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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까 말했던 것을 정리 한번 해보자. 우리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해 수업했었지? 우리는 불사불멸의 영혼이며, 다른 모든 영혼들이 행복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또 이런 가르침과 지식들이 바로 막대한 부와도 연결된다고 말했지.

우리의 실체는 영혼이고, 육신까지 갖추고 있는 영혼인 우리는 상상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 그 중에서 자기자신의 정체성 혹은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천명에 대해 어떤 상상을 하느냐가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내지. 그것은 진정한 창조라네.

예를 들어, 한서 자네... 민지와 만난 것이 우연인 것 같나? 잘 생각해보게. 민지를 만나기 전 혜린이라는 여자....."

 

순간 완전 깜짝 놀라서

"으악!! 잠깐만요!"

하고 벌떡 일어나서 소리질러버렸다.

아니,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내 예전 그 여자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니, 그것까지는 좋은데 혜린이 이야기는 민지 앞에서 한번도 한 적 없는데, 아 이게 뭐야? 

어쨌든 벌떡 일어서기까진 했는데 그 다음은 무슨 액션을 취해야 할 지 감도 안 잡혔다. 그저 민지를 슬쩍 쳐다봤다.

 

민지는 앉은 채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입을 뗀다.

"괜찮아. 오빠~ 오빠 나이 정도 되어가지고, 연애 경험 한번도 없었을 거라곤 생각 안 했어. 그냥 굳이 과거를 물어볼 필요가 없어서 안 물어본 거야. 근데 말 나온 김에 궁금해졌네. 어떤 여자였어? 나보다 예뻤나? 오빠한테 잘 해줬나? 아니지.. 바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계속 말씀해주세요."

 

내가 민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민지야. 그 얘긴 내가 나중에... 욱!"

말하고 있는데, 민지가 팔꿈치로 내 거시기를 툭 쳐버렸다. 팔꿈치가 뻗어나온 각도를 봤을 때 고의성은 없이 그냥 날 툭 친다도 한 것이 하필 거기에 맞은 것 같았다. 민지는 자기가 내 거시기를 쳤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놀라지도 않는다.

 

얄미운 영감님이 한번 씨익 웃더니 말씀하신다.

"어쨌든 그 혜린이와 헤어진 후에도 한동안 못잊었지 않은가? 더군다나 혜린이가 썼던 향수 냄새를 잊지 못했지. 그래서 자네는 우연이 아닌 필연적으로 같은 향수를 썼던 민지와의 인연을 손에 잡을 수 있었던 거야."

민지를 다시 슬쩍 쳐다봤다. 민지 눈꼬리가 올라갔다. 기분탓이 아니다. 분명 올라갔다. 최악이다.. 이 영감... 

 

"아하~ 내가 그 여자랑 같은 향수를 써서 나한테 끌렸던 거야? 이건 대놓고 좀 기분 나쁘네. 나 향수 바꿀래. 그 향수 이제 싫어졌어. 그리고 당분간은 우리..만나지 말..."

그 때 할머니 여고딩.. 아니 묘제 누님께서 땡글이 말에 끼어드셨다.

"에헤~ 민지야. 민지야~~ 우리는 너희를 계속 관찰해왔단다. 그래서 너희 모든 걸 다 알고 있지. 그리고 이것도 알고 있지. 한서가 이제 옛여자를 완전히 잊었다는 걸 말야. 이제 한서 눈에는 정말 너 밖에 안보인단다. 너는 사실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지 않니? 한서가 너를 진심으로 세상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겨우 향수 때문에 파국까지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니?

 

그 향수는 사실 너와 한서를 맺어주기 위해서 그 혜린이라는 아이가 쓴 것이지. 조만간 수업 때 배울 내용인데, 신들은 가끔 그런 식으로 진짜 인연을 만나게 해 주기도 한단다.

어쨌든 신들이 너도 좋아하던 그 향수를 그 아이도 좋아하게 만들었고, 그 혜린이라는 아이가 사용하고 있어서 그 향수 냄새가 한서의 머릿 속에 각인되있지. 그래야 너를 만날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거든.

 

너랑 한서가 맨처음 만날 때 서로 살짝 부딛히며 핸드폰 떨어트렸지? 그 때 한서가 니 향수 냄새에 잠깐 정신이 팔려있지 않았으면 한서가 너를 아슬아슬하게 부딪히지 않고 피해갔을 것이고 그러면 핸드폰을 떨어트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결국 너희 둘은 이렇게 만나고 있지도 못했겠지.

 

그러니 그 향수를 사용해주었고, 한서를 그간 멀쩡히 보관해 준 그 혜린이란 아이한테 고마워해야 할 면도 있단다.

 

모든 사건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자기를 기분 나쁘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분명 자기에게 이로운 점도 같이 달고 다니지. 그걸 찾아내야 해.. 모든 불운의 이면에 있는 유용한 이점을 말야.. 그 이점이 또 하나의 지식이 되고 영혼의 자양분이 되는 거야."

 

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그리고 말했다.

"알고 있어요. 오빠가 나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거.. 근데 왠지 기분 나쁘잖아요. 나한테 관심 가지게 된 계기가 예전 여친 향수랑 같은 향수를 내가 써고 있어서라는 게 솔직히 불쾌해요. 훌쩍(훌쩍 소리가 분명 작게이지만 들렸다), 그래도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오빠 진심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이건 그냥 넘어갈래요. 무슨 그 딴 이점이 다 있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나중에 이해하게 되겠죠."

그리고 민지가 날 쳐다봤다.

"오빠, 나한테 진짜 잘 해야 된다. 알았지? 못하기만 해 봐.. 그 땐 오빠 꼬추를 팔꿈치가 아니라 발로 차버릴 거야."

..... 난 민지가 실수로 내 소중이를 엘보우 공격한 줄 알았는데, 고의...였구나....

"으... 응..."

내가 모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철 빤쮸라도 입고 다녀야 되나?

"우리 돌아가면 백화점 같이 가. 거기서 나 향수 새 거 살 거니까 오빠가 골라줘. 예전 향수 말고! 나 진짜 그 향수 다신 안 쓸 거야. 오빠가 내 향수 냄새 맡을 때마다 그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 상상하니까 정말 기분 나쁘단 말야!"

민지가 뭔가 삐친 듯 말하고 있는데 표정은 왜 눈가가 촉촉해 보일까?

"그래 알았어. 민지야..." 

사실 이제 그 향수 냄새는 나에게 혜린이가 아닌 민지의 상징이 된 지가 오래 되었고, 더 이상 그 향기 때문에 혜린이가 떠올라 옛날도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한 적이 없었지만, 구차한 변명은 하기 싫었다.

그저... 그저 말이다. 무언가 민지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민지의 뺨과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냥 알았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묘제 누님은 '바'보'잔'아 영감님한테 한소리 하셨다.

"이 멍청한 영감아! 우리는 결혼할 얘네들을 더 사이좋게 만들어줘야 되는데, 헤어지게 만들 뻔 했잖아! 앞으로 연애쪽 이야기 하려면 나랑 먼저 상의하고 해라."

바잔 영감님은 묘제 누님 앞에서 또 이상한 재롱 부리더니 화제를 돌리고 싶으신 가보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 좀 쉬었다가 다음 수업 진행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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