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는데, 땡글이가 그 두 분께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요?"
할머니 여고딩님께서 말씀하셨다.
"호홍, 아가들~ 일단 자리에 좀 앉아서 이야기하지구."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의자와 탁자를 만지며 살며니 문질러 보았다.
환영같은 게 아니었다. 분명히 의자와 탁자의 질감이었으며, 문지를 때 스윽~하는 소리도 들렸고, 살짝 차가운 온도까지 느껴졌다. 이건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할머니 여고딩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여기는 아까 있던 바로 거기라고 할 수도 있고, 영감이랑 나랑 온 세계라고 할 수도 있지. 아까 과거, 현재, 미래는 사실 동시에 같이 있기도 하다는 말을 했지? 공간 역시도 마찬가지로 동일 공간에 여러 세계의 장소가 겹쳐 있을 수도 있거든. 컴퓨터 모니터에 뉴욕사진을 띄웠다가 다시 서울사진을 띄워도 모니터는 똑같은 모니터인 것이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 것처럼 아까 산장이라는 장소를 잠시 OFF 해버리고 원래 우리 세계의 장소를 ON 한 거지. 이 세계로 너희들을 데려온 이유는 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영감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들 있나? 예를 들면 기(氣)니, 관념권이니, 영혼이니 하는 세계 말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라는 정도만 생각했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땡글이도 말했다.
"영혼은 확실히 있어요. 제가 신끼가 조금 있어서 귀신 같은 걸 몇 번 본 적도 그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거든요. 지금은 거의 그런 경우가 없는데 어릴 때는 정말 많이 겪어서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스스로 의심한 적도 많았어요."
영감님이 말씀하셨다.
"어느 곳에서나 귀신이라고 불리든 영혼이라고 불리든 그런 영적인 존재들은 늘 우리 곁에 있지. 이 도서관에는 그런 영적인 존재를 우리 눈에 보이게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한 번 작동시켜 볼까?"
리모컨 같은 걸 깨내서 버튼을 삑~ 누르시더니 공간의 조명이 약간 초록빛이 되었다. 그러자 순간 깜짝 놀랐다.
내 왼쪽 앞에서 어떤 여자가 나는 빤히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여자는 몸과 얼굴은 심지어 반투명이었다. 옷은 개화기 때 복식 비슷하게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옛날 조선시대인지 고려시대인지 장군 복장을 하고 큰 창을 들고 있는 중년 남자도 있었다. 민지 옆에는 어린 소년이 한명과 아줌마 파마 머리를 한 할머니 한 명, 갓을 쓰고 있는 선비 모습의 아저씨 한 명이 있었다.
할머니 여고딩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니들 근처에 보이는 건 니들의 수호령들이란다. 평소에는 다른 잡신들도 우글거린다면, 그런 저급한 신들은 이 도서관에 들어올 수 없지. 저급하거나 원한과 집착이 찌든 귀신들은 저급한 주파수를 뿜어내는데, 여기는 그런 주파수를 부숴버리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런 신은 아예 이 곳에 접근이 불가능하고, 지금 니들이 보이는 신들은 그래도 고상한 주파수를 뿜어내는 신들이지. 그런 신들만이 자기 자손들의 수호령이 될 수 있고 말이야."
민지가 물었다.
"그럼 이 분들이 우리를 평소 보호해주고 있으신 분들이라는 거네요?"
"그렇지. 너 피 질질 흘리고 있고 팔 한 짝 없는 끔찍한 몰골의 귀신은 봤어도, 수호신은 본 적 없지? 원래 수호신들은 뒤에서 돕지. 모습을 잘 안드러내거든. 설령 드러내도 니네들 꿈에서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지. 그래서 너희들에게 다가올 미래나 위험, 유용한 정보 같은 걸 알려주지."
할머니 여고딩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셨다.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해봐. 영혼들도 좋아할 것이야."
내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눈에는 안보였지만 저를 수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고 하자 개화기 모던걸 수호령과 장군 수호령의 표정에서 온화한 미소가 보이는 듯 했다.
민지도
"안녕하세요. 평소 누군가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가끔 느꼈지만, 여러분들이었군요. 감사해요."
라고 하자
어린 소년은 방긋 웃었고 할머니와 선비도 살며시 미소 지었다.
영감님이 말씀하셨다.
"원래 신들이 하고 싶은 말도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음파로 재현할 수 있는데, 그 장치가 고장나서 수리를 맡겼는데, 아직 덜 고쳤는지 소식이 없네. 그게 좀 아쉽구만."
할머니 여고딩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영혼의 세게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장치를 잠깐 켜놓은 거야. 영감 다시 꺼요. 저번에 전기세 많이 나왔다고 윗대가리들이 얼마나 지랄지랄하던지.. 노랭이들..."
영감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리모컨 버튼을 다시 누르시자
조명이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그 수호령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이 장치가 이 건물 전체에 작동하는데다가 원래 전기를 엄청 잡아먹는 장치라서 전기세가 장난 아니거든. 그래서 오래는 못 켜. 예산 위원회 양반들이 좀 깐깐한 게 아니라서 말야. 허허"
아... 윗 분들 눈치 봐야 되는 건 여기도 같구나. 이건 우주를 초월한 보편적 현상이구만... 왠지 씁쓸하네.
"이제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할 것이야. 준비 됐어? 준비 안돼도 시작할 거지만.. 크크크. 지금 너희들이 배울 것은 앞으로 너희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 줄 것이고, 이 지식을 이용해서 세상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야 된단다. 너희 이기심만 채우려고 하면 안 돼.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앞으로 태어날 너희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야 된단다. 이게 제일 중요해. 너희 아이들은 너의 세계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들이 될 것이니까. 알았지? 너희들이 가고 난 다음에도 계속 지켜볼 것이고 잘 못 하면 매초리 맞을 줄 알아!"
할머니 여고딩님께서 썩소를 날리시며 말씀하셨다.
이제 본격 수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