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여고딩께서 말씀을 꺼내셨다.
"모든 세계에는 각 우주들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요원들이 필요해. 왜냐하면 각각의 세계 중 하나에 커다란 문제가 생길 때 다른 세계에 사는 요원들이 문제가 생긴 세계를 안정화시켜 주기 위해서이지. 여러 우주에 살고 있는 영적인 존재인 너희들이나 우리들 같은 사람들이 아주 옛날 여러 다수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맺은 일종의 협약 같은 것이지. 우리들 말고도 또 다른 수많은 우주의 영적 존재들도 이 연맹에 가입한 상태이지."
도대체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나와 민지가 그 요원들이라는 말인가?
"잠깐, 말씀 중에 죄송한데 그러면 우리들이 그 요원이라는 말인가요? 도대체 왜 우리가?"
내가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 여고딩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죄송한 거 알면서 내가 말하는데 왜 끼어드누? 난 내 말 끊어먹는 거 엄청 싫어하니까 좀 그러지 마라. 어흠. 그런데 말이지. 그 요원들을 그냥 뽑는 건 아니고, 연맹의 회원들이 후보들을 고르고 골라서 선택하는 것이지. 이 우주에서는 너희들이 선택된 것이고 말여."
민지가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왜 우리들이냐고요. 다른 잘난 사람들도 많은데..."
영감님께서 이번엔 말씀하신다.
"허허.. 자.. 깔끔하게 정리해주지. 첫번째, 각 우주마다 여러 우주를 연결해주는 요원이 필요하다. 두번째, 너희는 꽤 영혼이 순수한 편에 속하는 부류들 중 두명이다. 그리고 세번째.... 는 꼭 천기누설 하는 기분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자네들은 2명의 자식을 둘 것이야. 아들, 딸 이렇게 이란성 쌍둥이로 말이야. 그리고 그 쌍둥이들은 여기 이 세계에 큰 공헌을 할 천명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야.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앞으로 태어날 그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라도 꼭 우리의 요원들이 되어 우리에게 지식을 전수받아야 하는 것이야. 알겠는가?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도 이 우주 어딘가에서 자네들 자식들로 태어날 그 빛나는 영혼들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
오잉 뚀잉~! 그.. 그 말은 나랑 땡글이가 결혼할 운명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설마 우리의 자식들이 사생아로 태어나진 않을 것이다. 그런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민지를 힐끔 쳐다보며 표정을 살피니 민지도 놀란 표정이었다. 얼굴까지 살짝 빨게 졌다.
"그.. 그럼 이 오빠랑 제가 겨..결혼...?"
할머니 여고딩님께서 이런 게 재밌는지 머리를 뒤로 젖혀가며 깔깔깔 웃으신다.
"아이고~~~ 그래. 캬캬캬. 이런 거 관심 많을 나이구만... 크큭.. 맞아. 니네들은 아마 결혼할 거야. 세상은 사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걸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지. 그것을 예지력이라고 하지. 아마? 그렇다고 미래가 단 하나의 길로만 확정된 건 아니야. 여러 경로로 수많은 미래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고 매순간 선택할 때마다 수많은 스토리 중 하나가 결정되거나 다른 스토리로 갈아탈 수도 있지. 하지만, 대충 그려놓은 스케치처럼 큰 틀은 대략 정해져있는데, 그걸 이 세계에서는 사주니 숙명이니 운명이니 그렇게 부르지. 그렇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도 너희들은 결혼은 할 거야. 결혼이 아니더라도 동거만 쭉 할 수도 있는데, 너희들이 쌍둥이를 낳고 키운다는 큰 틀의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라.."
에이~ 설마 땡글이랑 아이들도 낳고 키우는데 결혼도 안하고 동거만 하겠는가?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그다지 옹호하지는 않지만, 우선 동거만 하면 나와 땡글이 부모님들이 들들 볶을 것 같다. 여기는 서양이 아니라 한국이다. 그리고 결혼을 안하면 우리 아이들에 대한 유무형의 제약이나 편견 같은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동거는 가능성의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한다.
민지가 테이블 밑으로 슬며시 내 손을 꼭 잡는다. 민지의 표정을 보니 절반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 같다.
어쨌든 민지도 나랑 결혼한다는 사실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확증 같아 기분이 좋다.
내가 말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 될 아이들을 낳고 키울 부모가 될 거란 말이죠?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그러면 우리한테 무슨 지식을 전수해주실 건가요?"
할아버지가 빙긋 웃으신다.
"허허. 그러면 바로 공부를 시작해볼까? 일단 둘다 일어나보게. 이제 우린 여행을 떠날 것이야."
민지와 나는 손을 꼭 잡은 채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나서 이상한 주문 같은 것을 외우신다.
'샤바샤바 아이샤바'
그러더니 아주 순식간에 방이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배경이 다 하얗다. 벽도 바닥도 없다. 발바닥에 바닥을 밟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지평선도 하늘도 없다. 그리고 바로 다시 새로운 배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온통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이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도서관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엔틱한 탁자가 있고 의자가 사람 숫자대로 4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