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재미 있었던 중학교를 졸업하고 재미 없기로 글로벌하게 소문난 대한민국의 고딩 생활을 한 지도 어언 1년이 지났다.
이제 나도 1년 뒤면 고삼차처럼 쓰디쓴 고3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남은 1년 시원하게 놀까?라고 잠시 생각도 했지만 나에겐 그 정도 배짱은 없다. 그랬다가 1년 재수할 바엔 차라리 지금 열공하는 게 백배 더 현명한 행동일 것이다.
이제 3월이 된 지도 며칠이 지났다. 반 애들 얼굴은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공부 유튜브 같은 데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중 실제로는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주 많다는 사실 말이다. 그 차이를 판별하는 법은 간단하다. 어떤 개념이나 지식을 누군가가 자신에게 물었을 때 설명할 수 있으면 알고 있는 것이고, '에~ 음~ 저~ 알긴 아는데..' 이렇게 명확히 설명 못하고 있으면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1교시 시작 종이 울리기 30초 전...
갑자기 앞문이 꽝! 열렸다. 보이시한 헤어스타일의 어떤 여자애가 숨을 헐떡이면서
"세이프 맞지? 헥헥."이라고 말했다.
애들이 나이스 타이밍이라면서 빨리 문 닫고 앉으라고 하는데, 이상하다.
우리 반에 저런 애가 있었나?
왜 처음 보는 것 같지?
근데 처음 보는데 왜 낯이 익은 것 같지?
그리고...
그리고..
왜.... 저 애가 내 눈에 꽉 차게 들어오지? 왜 저 애 주위는 새하얗게 보이지?
멍하게 그 애 얼굴만 바라보다가 그 30초가 다 지나갔는지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수업 시간에도 그 애 얼굴만 쳐다봤던 것 같다. 몰론 내 나름대로는 티 안나게 몰래몰래.
무슨 과목이었는지 기억도 안날 그 수업이 끝난 후에도 그 애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그 애랑 눈이 마주쳐버렸다. 아~ 딱 걸렸다.
그 애도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보냐?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시큰둥하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무슨 핑계를 대야 그럴싸 할까 생각하다가 입에서 나오는대로 아무 말이나 했다.
"어... 그러니까.. 너 어디서 본 것 같아서... 초등학교 어디 나왔냐?"
아~ 초등학교 이야기가 왜 내 입에서 나왔지?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ㅠㅠ
그 애가 말했다.
"난 이 동네 초등학교 안 나왔는데, 중2 때 이사왔거든. 달수초등학교 나왔어."
순간 흠찟 놀랐다. 나도 달수초 졸업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중1 입학 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왔었다.
"어! 진짜??? 나도 달수초 나왔어."
나는 놀란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도 달수초 나왔다고? 어쩐지 어디서 봤다했다."
"응. 우리집은 나 중학교 입학하기 바로 전에 이사왔어. 어버지가 아파트 당첨되셔서.. 하핫. 나도 네가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
"이야~ 이 학교에서 달수초 출신은 우리 밖에 없을 거야. 그치? 캬캬캬. 잘 지내보자. 동창~!"
그 애가 생긋 웃으면서 내 어깨를 톡 쳤다.
나는 순간 내 몸에 전기가 찌릿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몸에는 약하지만 전류가 흐른다더니 맞긴 맞구나.'
그리고 그 애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 지는 모르겠지만, 새콤달콤한 향기가 너를 어지럽게 했다. 그 때 직감했다. 이 향은 몇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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