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은 햄버거를 다 먹고 난 후, 아킬레우스에게 양치질에 관해서도 배웠다. 미래 사람들은 참 신기한 걸 사용했다. 맵고 화~한 죽 같은 걸 솔에 묻혀 그걸로 이를 닦다니... 먹지 말라고 하는데, 왜 먹지도 못하는 걸 입 안에 넣으라는 건지 조금 어처구니 없기도 했다. 입에 넣었으면 먹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양치질이 끝나고 나니 입 안 뿐 아니라 코 속까지 개운해지는 것이 그건 느낌이 좋았다.
사르나이와 아킬레우스에게 열차 안 구경하러 돌아다니는 건 좋은데, 1. 버튼 아무거나 막 누르지 말 것. 2. 승객들한테 인사하는 건 좋은데 괜히 시비 걸고 싸우지 말 것. 두 가지를 당부 듣고 윌은 여기저기 객실을 돌아다녔다.
(드림 트레인의 객실 안은 일반 열차 같은 객실도 있고 차원압축술로 마치 호화 크루즈 같은 넓고 쾌적한 객실도 있다. 이 열차는 비싼 좌석, 싼 좌석 개념이 없어서 자기 좌석도 있고, 또 심심하면 넓은 칸으로 이동하여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윌은 넓은 홀 같은 객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빨간머리의 소녀를 보았다. 마치 뭔가 깊게 사색하는 듯한 철학적인 얼굴 표정이었다. 부모님은 없는 것 같은데, 혼자서 여행하는 건가? 싶어서 말을 걸어보았다.
"얘야. 너 혼자여? 부모님은 안 계셔?"
"(두리번 거리더니) 저요? 아... 저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랑 같이 여행할 나이는 지났는데요."
"그래? 몇 살인데? 한 열 다섯? 열 여섯?"
"크큭. 아이고... 젊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만, 저는 서른 둘입니다. 제가 좀 동안이죠."
"으잉? 나보다 나이가 많어?? 아니 많어유? 나는 스물 여덟인디.. 실례했구만유. 진짜 동안이시네유."
"실례는요. 무슨.. 안녕하세요. 저는 아멜리아 부르자나제라고 합니다. 고대 점성술 자료를 찾으러 여행 중이예요."
"아.. 그렇군요. 안녕하세유. 저는 잉글랜드의 기사 윌 스미스라고 혀유. 잘 지내봐유. 근데 실례지만, 어느 나라 사람이세유? 여기는 다 국적이 다른 것 같아서유."
"저는 조지아 사람이예요. 흑해랑 카스피해 사이에 있어요."
"아. 멀리서 오셨군유. 흑해믄 보자... 비잔틴 제국 근처겠네유."
"네. 맞아요. 잘 아시네요. 사르나이랑 쟝한테 들었는데, 잉글랜드 십자군이시라고..."
"소문 참 빠르구만유. 맞아유. 제가 리처드 왕 군대 소속 기사구유. 살라딘 군대랑 전투하는 도중에 희한하게 여기로 들어오게 됐네유. 우리 동료들은 무사한가 걱정이구만유. 근데 아까부터 한참 창 밖을 바라보시던디, 생각할 게 많으신가봐유."
"아녜요. 저만의 명상법입니다. 일명 풍경명상이라고 제가 만든 거예요. 오호호."
"명상(meditation)유? 그건 뭔가유?"
"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탐구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거기에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룩하기 위한 강력한 기법이기도 하죠. 크리스트교의 묵상(contemplation) 비슷한 거라고 보시면 되요."
"아.. 그렇군유. 저는 점잖하긴 한디, 가만히 앉아있는 건 체질에 안 맞아서 그런 거 못하는데, 대단하시네유."
"후훗. 그러세요? 아킬레우스한테서 들었어요. 잉글랜드 '선비'라고 뻥 치셨다고. 세상에 잉글랜드에 '선비'라는 단어가 어딨냐고 그러던데요?"
"아따.. 그 친구.. 참 사람 말 못 믿네. 잉글랜드 전역은 못 돌아다녀서 딴 동네는 모르겠는데, 우리 동네에는 '선비'라는 단어가 진짜 있다니께유. Sun bee가 진짜 있다니까 그러네.. "
"... 아.. Seon bi가 아니라 Sun bee였어요? 근데 그런 꿀벌도 있어요?"
"네, 우리 동네에는 있어유. 그 놈이 참 얌전혀서 사람을 웬만하면 침으로 안 쏘거든유.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는 얌전하고 점잖은 사람을 Sun bee라고 부른다니께유. 워낙 얌전한 꿀벌이라서 그 놈들이 모은 꿀 맛도 그윽하게 달아유. 그래서 Sun bee가 모은 꿀을 특별히 얌전 Honey 라고 부른단 말여유.
그랴서 시끄럽고 말 많은 사람헌티 "시끄럽고, 얌전허니 얌전Honey나 먹어~" 이런 말을 하구만유."
"뭔가 굉장히 아재 개그스러운데... 어쨌든 기사면 칼싸움은 잘 하시겠어요."
자기 전공 분야가 나오지 윌은 괜히 어깨에 힘을 주면서 썰을 풀기 시작했다.
"제가 말여유. 칼을 한번 휘둘렀다 하면, 적들 목이 셋이 날아가구유. 판금 갑옷도 제 칼 앞에서는 종잇장 마냥 푹푹 뚫린단 말이쥬. 제가 50여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 나갔는디, 아직 손톱 하나 다친 적이 없구만유. 목이 베일 뻔 한 적은 있지만유. 정말 영점 몇 초 차이로 내가 먼저 칼로 찔러서 살았다니까유.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네유."
윌은 말하다가 그 때 아찔했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는지, 정말로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아멜리아가 윌의 얼굴을 잠시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제가 점성술이랑 관상, 손금, 타로, 동양의 주역, 명리학 이런 것도 좀 할 줄 알 거든요. 그런데 스미스씨 관상을 보니까 쉽게 죽을 상은 아니네요. 손금도 좀 봐드릴까요? 손 좀.."
손을 내밀라는 제스쳐를 취하는 아멜리아를 보면서 괜히 이 순박한 시골 청년 윌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 그래도 되나유? 남녀가 유별한디.."
"풋. 진짜 선비 맞긴 맞으시군요. 괜찮아요. 이성으로 잡는 것도 아닌데."
아멜리아는 윌의 손금을 보기도 하고, 자기 손으로 윌의 손을 만지면서 손바닥 두께도 측정하기도 하면서 윌에게 말했다.
이미 윌은 본능상 얼굴이 완전히 빨개진 상태였다.
"워매. 내 손 이렇게 만진 여자는 여태 울 엄니랑 캐서린 뿐인디..."
"캐서린이요? 여기 수석기관사 캐서린은 아닐테고.. 여자친구인가 봐요?"
"여자친구는 아니고, 약혼자이구만유."
"아~ 약혼녀~.. 흠... 근데 어쨌든 생명선이 진짜 길긴 기네요. 거기에 중간 중간 끊기는 선이 있어서 몇 번 죽을 고비가 있긴 해도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진하고 긴 것이 어떻게든 오래 살아남을 팔자이신 것 같아요."
"그렇쥬? 역시 제가 동료들 사이에서 별명이 바퀴벌레 잖아유. 헤헷. 드럽게 안 죽는다고 붙은 별명이예유.. 하하하. 또 제 좌우명이 '굵고 길게 살자.'인디, 역시 내 손금도 그런가 보네유."
아멜리아는 빙그레 웃으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이미 해는 져서 하늘에는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산의 색깔이이 이제는 거의 밤하늘의 검은색과 구분이 가지 않았다. 윌도 같이 별들을 바라보다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아!"라고 하면서 아멜리아에게 말을 했다.
"아! 근데 아까 점성술도 하실 줄 안다고 하셨쥬? 그럼 혹시 점성술로 궁합 같은 것도 볼 수 있나유?"
"네. 볼 줄은 아는데.. 누구랑.. 아! 아까 약혼녀 캐서린~"
"이히히히. 네... 캐서린이랑 저랑 궁합 좀 부탁 좀 드릴게유. 지가 지금은 돈이 없어서 복채는 못 드리지만서두, 잉글랜드 기사의 명예를 걸구 부르자나제씨가 위험할 땐 목숨 걸고 지켜드릴 것 약속 드릴게유."
"뭐.. 안 그러셔도 되요. 어쨌든 마음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방긋) 그럼 스미스씨는 생일이 언제예요?"
"지는 12월 20일이구유. 캐서린은.. 보자.. 아~ 9월 18일이예유."
"흠... 그럼 사수자리랑 처녀자리네요.. 사수는 불의 성질... 처녀는 흙의 성질...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네! 당연히 솔직허게 말씀하셔야쥬. 저는 언제나 긍정적인 오픈 마인드이구만유."
"둘은 솔직히 잘 안 맞아요. 실망하셨죠?"
"아녀유~ 나도 내 자신이 맘에 안 들고 안 맞을 때가 있는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이랑 딱 맞을 수 있대유. 그냥 그렇게 맞춰가며 사는 거쥬."
"후후. 정말 긍정 마인드시네요. 근데 제가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헤어지실 수..."
"하하하. 헤어지는 거야 뭐. 캐서린이랑 맨날 헤어지는데유. 맨날 갸 집 앞까지 바래다 주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고 맨날 그러는데유. 만약 결혼혀서 같은 침대에서 자더라도 막상 잠들면 각자 꿈나라로 아침까지는 굿바이하는 건데유. 뭐~"
"제가 스미스씨랑 캐서린양의 태어난 년도와 시간까지 알면, 더 정확한 동양의 궁합법으로 봐드릴 수 있는데, 아쉽네요. 근데 어쨌든 스미스씨의 어떤 정보도 다 우선 오픈 마인드로 받아들여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서 소화시키는 그 밝은 마음가짐은 정말 좋아요. 이런 애티튜드라면 운명은 얼마든 바꿀 수 있어요. 원래 관상학에서도 관상보다는 찰색(察色:현재 얼굴에 드러난 표정, 기운, 얼굴색 같은 것)이고 찰색보다는 심상(마음가짐, 태도, 인품, 생각의 수준, 품고 있는 이상(理想) 등)이라고 했어요. 눈에 보이는 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하고 힘이 크다는 뜻이랍니다. 스미스씨 손금 생명선이 잔주름이 많아도 굵고 긴 이유를 알겠어요. 이런 긍정적이고 굳센 마음의 태도를 지니고 있으니 모든 역경을 깰 수 밖에 없으시겠어요. 마치 게임에서 말하는 사기캐 같은 느낌인데요. 하핫. 약혼녀 캐서린 양과도 잘 되기를 축복합니다."
"헤헤. 정말 오랜만에 들은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유. 축복도 감사하구만유. 제가 약속은 꼭 지킵니다. 부르자나제씨가 위험하실 땐 제가 기사의 명예를 걸고 꼭 지켜드리겠구만유. 아.. 물론 힘 쓸 일 있으실 때도 부르셔도 되유. 헤헤. 지가 힘도 좀 쎄서유."
"후훗. 네. 어쨌든 오늘 반가웠어요. 스미스씨.. 저는 이만 제 룸에 들어가 볼게요. 아! 근데 룸은 배정 받으셨어요? 이제 주무실 시간이 되었을텐데.. 아직 빈 방이 몇 개 있을 거예요. 여기 직원들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앗! 그러고 보니 내 룸을 준다는 말은 못 들었네유. 감사혀유. 아킬레우스나 사르나이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네유. 갸들이 길드 수습공이라면서유? 대빵들한티 그런 것까지 물어보면 좀 미안하니까, 수습공들한테 물어봐야겠어유."
"네~ 그럼 쉬세요. 스미스씨."
"네~ 들어가보셔유. 부르자나네씨."
"아킬레우스 어딨능가? 얼릉 좀 나와보게~ 난 어디서 자면 되겠능가?"
윌은 아킬레우스를 찾으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축복과 행복이 깃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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