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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시공간, 지혜, 세상

날씨가 맑은 오늘-하늘을 올려다 보다.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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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천지신명, 하느님, 천지기운, 절대신, 하늘, 그냥 신이라고 부르는 이 존재는 무엇인가?

우선 우리의 본질는 원소, 인기(人氣)라고도 불리우는 영혼이다.

그리고 그 영혼과 육신이 결합될 때 파생되어 생겨난 또 하나의 에너지가 6006개의 파일같은 입자로 구성된 마음이라는 에너지이다.

 

이 점부터 알고 난 후,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그럼 신이란 무엇인가?

이 대자연(지구의 대자연 뿐 아니라 대우주=대자연 이다. 대우주는 또 수많은 천체와 물질, 암흑물질, 에너지, 암흑에너지로 구성된 팽창하고 있는 우리 우주 뿐 아니라 그 바깥과 다른 우주, 다른 차원, 영혼 세계 모두를 통틀어 일컫는다.)

이 대자연 그 자체이다. 대자연은 알다시피 물질과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다. 우리가 지구와 관측가능한 우주 안에서 관찰하고 있는 의식도 지성도 없어 보이는 우주는 이 하느님의 몸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왜 물질과 에너지들이 의식이 없어 보이느냐 하면 말 그대로 하느님 몸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에를 들어 우리의 몸체의 일부분인 손가락이나 입술에는 의식도 지성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의식과 지성을 갖춘 것은 어디까지나 전체이지, 일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 대자연은 우리를 실제로 아낀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인 영혼을 말이다.

그래서 영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우주가 도와준다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간절히"가 아니라 "진정으로"이다. 이 묘한 차이는 굉장히 크다.

간절하다라는 말에는 욕심, (안 되는 걸) 억지로, 꾸역꾸역, 어거지라는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다. ('노오력'도 이런 점에서 간절히와 같은 뉘앙스이다.)

간절히 바랬는데 왜 안되냐구? 간절히 바래서 안됐던 거다. 번역이 이상한 건지 작가가 뭣도 모르고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진정으로'라는 것은 '당연한 내 권리처럼' 이라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러워서 억지스러운 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기치를 너무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나 자기 물건도 아닌데 자기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들고 가는 사람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우주와 그대의 무의식을 속여라. 속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다면, 아주 태연하게 연기하라. 

평상시에 아직 현실에서는 현실화되지 않았을 때 말이다. 그것이 심상화니 뭐니 하는 것의 본질이다.

자세한 것은 네빌 고다드의 책들에 무수히 언급되었다. 저런 종류 책들 중 내가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것 몇 개를 꼽으라면 네빌 고다드의 책들과 바딤 젤란드의 책들이다. 특히 바딤의 책은 처음 보면 무슨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수많은 책들을 읽고 다시 보고 또 다른 책들도 읽고 다시 보면 이해가 된다.

다른 책들도 많이 독서하라는 배려가 담긴 바딤의 빅픽처인가? ㅎ 

 

앞에서 말했지만, 대자연은 우리를 아끼기 때문에 늘 우리에게 가장 최상으로 알맞은 것을 준다. 왜 적당해 보이지 않느냐 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교육받기 위해서 왔다. 더 높은 차원으로 영혼이 진보하기 위해서 왔다. 그런 본질적인 목적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기 주변을 둘러싼 모든 환경은 그 목적에 최고로 적합한 것이 맞다.

설령 당장은 이해가 안될 지라도 일단 감사히 받고 넘어가라. 받는다는 건 별개 아니다. 마음 속으로 '받았다'라고 생각하면 받은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는 불평할 것이 없다. 그렇기에 천공 스승님도 절대 불평불만, 남탓은 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는가. 불평불만을 하면 더 어려워질 것이고 불평불만을 넘어 남탓을 하면 병석에 눕게 만든다고... 

이 말씀은 반대로 주위 환경을 감사히 여기면 더 감사할 것만 대자연이 제공한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또한 우리가 자기 환경에 감사히 하고,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면 그게 뭔지 곰곰히 생각하고 찾아보고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로움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 환경은 언제나 똑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마치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인 자신을 상상해보라. 거기엔 자신에게 유익하고 유용한 정보들이 빼곡히 가득 차 있다.

자기 환경에 감사할 것을 곰곰히 생각해본다는 것은 도서관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가 담긴 수많은 책들을 검색해본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끌어당겼다는 것은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가 담긴 책을 찾아냈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일종의 훈련이고 연습이 되기도 한다. 즉, 자기 환경과 자기를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생각과 감정상태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예리한 촉을 훈련하고 있다라는 것과 동의어가 된다. 그 예리해진 촉으로 기회를 발굴해내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위기를 알아채며, 남들이 행운이라고 부르는 미묘하게 숨겨진 기운의 냄새를 맡을 줄 알게 되고, 남들 눈에는 돌멩이로만 보이는 물체가, 촉이 예리해질대로 예리해진 그대의 눈에는 그것이 금광석임이 단박에 보일 것이다.

 

이것은 상승작용을 일으켜 자기의 소원, 꿈, 최종목표로 가는 길에 속도를 더 붙여줄 것이고, 더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의 경험은 갈수록 확신과 자신감을 더욱 붙여줘서 더더욱 상승효과를 일으키리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마치 금융에서 말하는 복리이자의 계산가 비슷하게 말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앞에서도 말한 감사에 관한 것이다.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는 것은 더 큰 감사할 일을 불러들일 것이다. 웬만하면 하늘에도 감사하고 더 중요한 건 사람에게 감사하라. 그대가 대자연의 자식이듯이 그대의 부모님, 친척, 친구, 연인, 자식, 한번도 보지 못한 다른 나라의 이름 모를 사람까지 모두가 동등한 대자연 하느님의 자식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감사하라. 대자연인 하느님은 자기 자식들을 예뻐해주는 사람을 안 예뻐해줄 리가 없으시다.

 

 그리고 사람에게 덕행을 베풀라. 덕행이라고 해서 돈을 주고 먹을 걸 기부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 한마디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도움되는 한마디. 용기를 주고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단 한마디는 영혼에 주는 보약이다. 사람에게 먹을 것만 주어 가축으로 만들지 말고, 진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하라. 그것이 진짜 선행이고 덕행이다.

감사와 덕행의 공덕은 반드시 상상 이상의 것을 베풀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은 알기 때문이다. 당신이 하늘의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하늘은 그런 사람에게 더욱 더 힘을 보태주리라.

 

정말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 시각화니 뭐니도 필요 없다. 삶 자체를 이미 인간이 시각화 할 수 있는 장면 중에서 가장 최고의 경지에 해당하는 장면을 실제 현실에서 시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기만 보고 있는 시각화가 아니라 만인이 보고 있는 시각화를 말이다.

유우니 소금 사막의 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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