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잔 형님과 묘제 누님이 이 행성 구경시켜준다고 하셔서 나랑 땡글이는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할 게 없었다. 그냥 맨몸으로 왔으니...
겨울 치악산 여행 왔다가 외계 행성 구경이라니, 정말 살다가 별 일 다 보네. 아! 맞다. 치악산.. 어떻하지? 바잔 형님한테 물어봤다.
"바잔 형님, 저랑 민지는 치악산 왔는데, 다시 우리 돌아갈 때 원래 시간, 원래 장소로 가는 건가요?"
"응. 맞아. 여기로 떠났던 그 시간으로 돌려보내 줄 거야. 걱정 말라굿!"
라고 말하며 엄지척을 하셨다.
도서관 밖으로 나가자, 보도와 잔디밭, 꽃밭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있던 도서관 서재는 1층이었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 도서관 전체는 신경 써서 보지는 않았기에 잘은 모르겠는데 대략 15층 이상은 되어보였다.
하늘은 지구의 하늘과 그냥 똑같았다. 연파란색의 하늘, 떠다니는 몇조각 흰 구름... 그리고 지구의 태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태양 1개.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도 기온도 지구의 그것이었다.
조금 걸어가자 야외 주차장 같은 공간이 보였고, 거기에 다양한 디자인의 탈 것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잘 아는 비행접시형의 탈 것, 우리 세계의 자동차와 흡사한 디자인의 탈 것, 물고기 비슷하게 생긴 탈 것, 공기 저항 같은 건 고려 안하고 만들었는지 정말 기괴한 바위처럼 생긴 탈 것.. 등등 여기 세계 교통수단은 디자인이 다양했다.
그 중 우리가 탈 것은 시가형 비행접시 모양이었다. 크기는 앞뒤가 7m, 좌우가 2m, 높이가 3m 쯤 되어보였다. 뚜껑은 둥근 통유리 전체였다. 바잔형님이 그 비행접시 앞에서 야구 사인 같은 제스쳐를 취하자 시가형 비행접시 아래에서 문이 열리고 계단 같은 게 내려왔다. 우린 계단으로 올라가서 비행접시 안에 들어갔다. 좌석이 16개가 4열로 있었다.
묘제 누님이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라고 하셨고, 나와 땡글이는 앞에서 둘째 줄 가까이 있는 두 좌석에 앉았다.
맨 앞 가운데에서 왼쪽에 앉으신 바잔 형님이 머리에 손오공이 머리에 쓰는 긴고아 같은 걸 쓰시고, 기계판의 무언가를 누르자, 내 몸이 좌석에 착 달라붙은 느낌이 들었다.
"어~? 뭐예요?"
라고 묻자 형님이 지구의 안전벨트 같은 건데, 띠로 매는 게 아니라 그냥 의자에 몸을 붙여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작게 우웅~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비행접시가 공중에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전체가 통유리였던 뚜껑이 일부는 검은 색으로 변해서 마치 뚜껑있는 자동차에 창문이 나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떠오르자 바잔 형님이
"렛츠 고우!"
라고 하셨고, 비행접시는 휭~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 행성에서도 존재하는 관성의 법칙 때문에 내 몸이 좀 뒤로 쏠리는 느낌과 함께 날아올랐다.
묘제 누님은
"이 양반이 좀 애 같다니까, 이 머리에 차고 있는 게 조정장치인데 조종자의 생각을 읽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속도를 조절하거든. 그래서 굳이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는데, 꼭 "렛츠 고우"니 "가즈아"니 이런단 말야. 이런 어린애같은 순수함 땜에 내가 예전 370년 전에 홀랑 넘어갔는데, 이젠 좀 철 들었으면 좋겠어. 알았죠? 낭군님아~"
묘제 누님이 낭군님이라고 불러서 기분이 좋아지신 바잔 형님은
"오빠 달려~!" 이러셨다. 그러더니 더욱 빠르게 비행접시가 날았다.
묘제 누님도 그런 형님이 귀여워 보이셨나 그저 피식 웃으셨다.
땡글이가 물었다.
"근데 언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 말을 안해줬네. 우리 행성에서 나름 부촌이면서 자연 환경이 예쁜 곳으로 갈 거야. 이 행성은 교통수단 속도가 워낙 빨라서 도시라는 개념이 희박해. 어디든 너무 빨리 가니까 오밀조밀 모여 살 필요가 없거든. 다 공중을 날아다니니 굳이 잘 닦인 도로도 필요 없고, 그래서 그냥 경치 좋은 곳에 집 짓고 소규모로 마을만 이루면서 살아. 아마 니네 지구의 부동산업자들이 우리 행성 오면 다 망할 거다. 깔깔깔"
바잔 형님이 저기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행성도 참 경치가 예쁘지? 저기가 한체크 산이라는 산인데, 우리 행성에서 꽤 신성한 곳 중 하나야."
밖을 보니 장엄한 분위기를 내는 산이 멀리서 보였다. 봉우리 주변이 하얀 것이 마치 일본 후지산과 흡사하게 생겼다.
그리고 이내 초원이 보였고, 또 이내 사막이 보였다. 비행접시의 속도가 어마어마 했다. 좀 높이 날아서 아래를 보니까 초원이니, 사막이니, 산맥이니.. 이런 게 식별 가능했지, 지상 가까이서 날았으면 식별이 불가능했을 속도로 우리는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우리 비행접시 말고도 많은 비행접시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이 행성은 정말 행성 전체가 일일생활권인가봐요."
라고 내가 말하니까 바잔 형님이 웃으면서
"일일? 아닌데, 1/4일 생활권인데, 그것도 속도제한 규정이 있어서 1/4일이지, 그거 없으면 그냥 1시간 생활권인데.. 어쨌든 우리가 갈 곳은 한 20분만 더 가면 되니까 바깥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구."
그런데 이 비행접시의 동력은 뭘까? 제트엔진이나 프로펠러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바잔 형님은 이 비행접시는 광자와 전자기력과 반중력을 이용해서 움직인다고 했다. 그리고 설명하기 귀찮은지 본인도 잘 모르는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단다. 그러고는
"음악이나 틀어볼까?"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음원을 알 수가 없는 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행성 기술은 정말 신기하다 광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홀로그램이 나오고 음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음악소리가 나온다. 분명 어딘가에 음원이나 광원이 있을 건데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못들어본 음악이긴 했는데, 느낌이 한국의 2000년대~2010년 초반 감성 물씬 났다. 투애니원, 미쓰에이 그런 쪽 감성이었다.
어? 그런데 공중에 무슨 커다란 바위 같은 게 떠 있는 것도 보였다. 저게 뭐냐고 물어보니 형님이 공중촌라고 했다. 그런데 자기는 땅바닥에 발 붙이고 사는 걸 좋아해서 저런데서는 살기 싫다고 하셨다.
민지와 묘제 누님은 성형에서 주제가 의상으로 바뀌었다. 민지는 여기도 한복 같은 전통의상이라는 것이 있느냐?라고 물어봤는데, 누님은 지금 자기가 입고 있는 게 전통 의상이라고 하셨다. 민지가 이건 그냥 평상복 아니냐고 하자, 묘제 누님은 우리는 원래 이런 스타일이 전통의상이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 이곳의 유행은 지구의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런 건 우리와 많이 다르구나..라고 느끼며 바깥 경치 구경을 하고 있자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거대한 나무였다. 나무가 빌딩처럼 거대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건 진짜 빌딩 같았다. 나무에 창문이 나있었고 창문에는 조명이 들어와 있는 것도 보였다.나무 둥치 쪽에는 출입구도 몇 개 나 있는 것도 보였다.우리는 나무 꼭대기쪽에 있는 커다란 구멍같은 문으로 비행접이를 탄 채 들어갔다. 거기는 주차장이었다. 나무 속 주차장이라 정말 신기했다. 안에는 조명시설도 갖추어져 있었다. 홀로그램 광원은 안보이게 할 수 있어도 전등 광원은 못 숨기나보다. 그리고 역시 나무 안쪽답게 나무 특유의 향이 솔솔 나는 것이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피톤치드 흡입이라는 것인가? 이 행성 나무에도 피톤치드가 나오겠지? 그럴거야. 아마.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서 로비에 나오니 목재로 만든 빌딩 같은 분위기가 났다. 벽도 바닥도 모두 통으로 된 나무이고, 몇몇 창틀이나 가구 일부분이나 기계류만 금속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물질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나무에 공간을 만들면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나무가 죽지 않을까? 그러면 건물이 붕괴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바잔 형님에게 물어보니 이 나무 이름은 [와삐나무]라는 나무인데 가장 안쪽의 심만 죽지 않으면 방을 너무 과하게만 안만들면 안죽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나무건물 관리실에는 나무심 관리부, 가지및나무잎 관리부, 뿌리 관리부라는 부서도 따로 있다고 하였다. 이 나무건물은 일종의 주상복합 같은 개념인데 여기 거주자들은 재산이 그래도 어느정도 넉넉하면서 자연을 좋아하는 부류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건물 밖을 나와서 밖을 보니 제법 큰 호수가 있었다. 나무의 생존에 필요한 물과 거주민이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보통 [와삐나무건물]은 호수나 큰 강 주변에 심어서 만든다고 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어린 묘목에서 건물 크기로 성장하려면 100년이 걸리지만, 유전공학으로 10년이면 금방 자라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알맞게 성장했으면 성장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 나무 거의 꼭대기쪽부터 뿌리 바깥쪽으로 길게 내리뻗은 바람에 나부끼는 망토 같은 부분이었다. (리쥬 사람들도 그 부분을 망토라고 부른다고 묘제 누님한테서 들었다. 사람이 보는 눈은 어느 우주의 거주민이든 다 비슷한가보다.)
지구의 어떤 나무에서도 이런 부위는 못 보았다. 정말 천과 같은 재질은 아니고, 딱딱한 나무껍질의 한 부분이 저렇게 자라난 것 같은데 저 거대한 나무 껍질이 어떻게 저렇게 자라날 수 있었을까?
묘제 누님의 설명에 의하면 이건 와삐나무의 망토는 식물학자들도 왜 저런 게 있는지 이유를 잘 모른다고 했다. 한가지 유력한 가설은 [와삐나무의 망토는 다른 차원 우주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용도일 것이다.] 라는 가설이라고 했다. 실제 이 망토를 제거한 와삐나무는 생장이 느려지고, 재생하는 족족 계속 제거하면 어느 순간 죽어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그렇고, 이 행성 거주민들에게는 이 와삐나무의 망토가 햇빛과 비 가림막으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용도로 사용되는 듯 했다. 와삐나무 망토에는 몇 쌍의 기둥을 세워 망토가 추락하지 않게 튼튼하게 했고(바잔 형님에 의하면 사실 받침 기둥이 없어도 망토가 부러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혹시나 모를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세워둔 거라고 했다.) 그 시원한 그늘 아래서 자리를 깔고 소풍 나와 있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호숫가에도 자연을 만끽하러 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우리 지구의 오리배 같은 탈 것도 호수에서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까 슬쩍 들은 묘제 누님의 말처럼 이곳 사람들의 복식은 진짜 유럽이나 미국의 19세기 스타일 같이 보였다. 19세기 복식에 비행접시라니...뭔가 밸런스가 안맞는 기분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현대식 복식 같은 게 전통복식이고, 19세기 복식같은 게 현대복식이라니 거꾸로 가는 세계사 같았다.
우리도 사람들처럼 망토 아래에도 들어가보고 호숫가 근처도 걸으면서 자연을 감상하고 이 행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는데, 여자아이처럼 생긴 로봇이 다가오더니 필요한 것 있으시냐고 물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걸 보니 전통복장을 한 로봇인가보다.
이 로봇은 다리는 있는데 팔은 없고 손만 있었다. 그러니까 두 손만 공중을 떠다니며 움직이고 있었다. 묘제 할머니가 맥주 한 캔씩 하자면서 맥주 4캔과 쥐포를 로봇에게 주문하셨다. 그리고 카드 같은 걸 내밀자 로봇의 눈이 카드를 인식하고는 주문완료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로봇의 두 손이 어디론가 휙 날아갔다. 그 사이에 로봇소녀는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재롱을 보여준다면서 동요같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원래 귀여운 비주얼로 제작된 로봇인데 노래까지 부르니 더 귀여웠다. 노래가 끝날 무렵 날아간 두 손이 봉지를 들고 다시 날아왔고 그 봉지 안에는 맥주와 쥐포가 있었다. 걸어다니는 자판기라고 해야하나? 걸어다니면서 손은 날아다니는 편의점 알바라고 해야하나? 이러한 로봇이었다.
'치익~촥~!' 캔의 꼭지를 따고 한모금 들이켰다.
"크으~"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곳 맥주의 맛은 기가 막혔다. 나도 맥주라면 안먹어본 종류가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내가 먹어본 맥주 중 단연 최고였다. 분명 맥주는 맥주인데 지구에는 이것과 비슷한 맥주가 없어서 다른 맥주에 빗대어 묘사를 못하겠다. (맥주 사업도 같이 하고 싶어지... 쿨럭...)
그렇게 기분좋게 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는데 호수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꺄악 이라고 소리질렀다. 사람들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저 산 높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어떤 비행 물체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비행접시 타고 날라오는 동안 지구의 비행기처럼 날개 있는 비행물체는 본 적이 없었는데, 날개 있는 비행물체도 있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점점 다가오니 그것은 비행기가 아니라 드래곤이었다. 분명 드래곤이었다. 영화에서 CG로만 보던 드래곤이 이 세계에 있었다니...
바잔 형님은 놀라지 말라고 했다. 저건 [리마야카]라는 생물인데, 성격이 아주 온순하고 지능도 높고 교감력도 높아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육식동물이기는 해서, 날아다니는 새나 강, 호수, 바다의 물고기를 주로 먹고 가끔 가축이나 사람이랑 같이 산책 나온 반려동물도 잡아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리마야카는 새끼를 잘 안낳아서(정확히는 알이다. 살무사나 상어처럼 어미 뱃 속에서 알이 부화하는 난태생이라고 한다.) 그 수가 희귀하기 때문에 사냥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었다고 했다. 오히려 이 행성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날아다닐 수 있는 이유는 비행선이 헬륨 가스로 공중에 떠다니듯이 저 생물은 체내에서 헬륨을 만들어낼 줄 아는데 그래서 공중에 뜰 수 있다고 한다. 좀 튀어나온 볼록 똥배를 빼면 정말 멋있게 생긴 놈이었다. 그 놈은 잠시 와삐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닭소리 비슷하게 꼬꼬꼭~ 소릴 내더니 다시 저 하늘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실컷 산책한 후 나무 빌딩 속 식당에 들어가서 생선초밥과 캘리포니아 롤 같은 메뉴를 시켜 식사 하였다. 이것도 참 별미였다. 혹시나 싶어서 바잔 형님께 이것도 곤충 고기냐고 물었는데, 이건 진짜 생선살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식사 하면서 이 행성의 사회 정치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 들었다.
그 중 하나를 말하자면, 이 세계에는 신체 개조로 다시 젊게는 만들 수 있지만, 자연과 어느정도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 77회라는 신체 회춘 개조 제한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신체나이를 젊게 하고 60대 정도까지 사용한 다음에 다시 젊게 만드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너무 자주 젊게 하면 77회를 금방 다 써버리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극히 일부 77회도 너무 적다로 불평하는 사람도 있으나, 77회 다 안채우고 영원한 안식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윤회와 환생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어버린 이 세계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그다지 슬픈 현상이 아니다. 너무 오래 살아서 지긋지긋한 오랜 기억의 울타리에서 사느니 아예 전생의 기억이 없는 환생을 통해 완전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꽤 된다고 했다. 장례식도 근엄하게 하지 않고, 그냥 잘가~ 이정도 느낌의 송별식이라고 한다. 아차피 다시 환생할 거 빨리 환생하자 그런 느낌인가. 어쨌든 묘제 누님은 자기는 보통 60대 초반 신체가 되면 그냥 새로 신체 개조하는데 저 영감은 70이 한참 넘어서도 육신을 안바꾼단다. 그러면서 나 빨리 보내고 자기는 오래 살고 싶어하는 모양이라고 농담도 하셨다.
그리고 내가 살던 우주와 현재 바잔형님네 우주 말고 다른 우주에 대해서, 그 '동맹'이라는 것과 '요원'에 대한 여러 정보와 룰도 들었다.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겠다.)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나와 민지 사이에서 장차 태어난다는 쌍둥이들이 장차 이 세계에서 해야할 천명에 대해서도 들었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민지에게도 물어보니 나랑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아직 부모가 되지도 않았는데도 자랑스러운 자식들을 둔 부모가 된 듯 뿌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묘제 누님께 우리 아이들의 천명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민지에게
"우리 애기들 잘 키우자."
라고 말할 뻔 했다.
아, 맞다.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중충 목축 공장에도 들렸다. 거기에서 바잔 형님은 친구분이라는 이사님을 봤다. 이 이사님은 신체 개조 받은지 얼마 안되신 듯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중절모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옛날풍 양복을 입으신 걸 보니 여기 최신 유행 스타일인가보다.
그 이사님의 소개로 정말로 사람 허벅지 만한 우중충 떼도 보았고 직접 번쩍 들어올려도 보았다. 꽤 무거운 것이 한마리가 10~15kg은 나가는 듯 했다. 또한 어떻게 사육하면 되는지, 먹이는 뭔지, 어떤 과정으로 거쳐 식료품화 되는지도 자세히 들었다.
우중충의 뜻은 [소 우(牛), 무리 중(衆), 벌레 충(蟲) ] 쇠고기 맛이 나면서 무리를 지어 사는 벌레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얘네들은 일단 사슴벌레 비슷하다고는 말했었고, 눈이 3개이고, 꼭 포유류 눈동자처럼 생겼다. 그게 귀엽다면 귀엽고 징그럽다면 징그러운 부분이다. 그리고 울음소리도 내는데 "오~옴~"이라는 떨림이 심하면서 낮은 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자기 목을 손으로 빨리 탁탁 두드리면서 저음으로 '오~옴~' 소리를 내보라. 그런 소리다.
이사님께서는 내가 만약 이 곳 세계 대학에서 전공과정 수료하면 이곳 직원으로 채용할 용의가 있다고 하셨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으면 우중충 목축기술을 우리 지구에 비공식적인 루트로 전해주겠다고도 하셨다. 환경과 식량 문제가 심각한 우리 지구에도 우중충 사육 기술을 전파해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자기들은 누구랑 경쟁한다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어느 우주에라도 이로움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한단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다.
아.. 물론 우리 지구에 기술을 전해줄 때 당연히 회사도 설립할 것이고 대표도 세울 것인데, 물론 회사 명의와 회사 대표는 나... 박한서가 될 것이라고 약속도 하셨다. 그래도 내가 이 우주와 지구를 연결해주는 공인된 요원인데 나한테 안맡기면 누구한테 맡기겠냐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사님한테 '감사합니다.'라고 몇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미... 재벌이 될 운명을 타고 나지는 않았지만, 이 순간부터 그 운명은 정해졌다. 너무 기쁘다. 당장이라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사표 내고 싶었지만, 그 날까지는 참고 다녀야지.뭐. 땡글이한테 맛있는 거랑 예쁜 선물은 사줘야 되니까.
옆에서 나와 이사님과 바잔 형님의 말을 듣고 있던 땡글이 민지도 자기도 뭐 사업할 것 없냐고 물어봤고, 묘제 누님은 무릎을 탁 치시더니, 이래서 하늘은 공평하다며 이 행성 사람들은 과학기술은 발달해있는데, 패션감각, 미적 감각은 꽝이라면서 자기랑 같이 오히려 역으로 지구의 패션을 이곳에 전파해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예를 들어 패션 상품이나 예쁜 옷 도소매라든가 미모에 관심이 많은 이곳 사람들을 섭외하여 K-뷰티 단체 관광 같은 거 기획하면 정말 잘 될 것 같다고 하셨고, 이 이야기를 듣던 민지도 자기 무릎을 탁 치면서 눈을 더더욱 땡그랗게 떴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 라인이다. 나는 쇠고기랑 비슷한 맛을 내는 곤충을 키우는 견우.. 민지는 패션, 뷰티 이런 쪽에서 일하는 직녀.. -_-;;; 물론 우리 오작교는 최첨단이라 1년에 한번 이어지는 게 아니라 보고싶을 때마다 이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덧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다시 돌아갈 땐 아름다운 이 행성의 태양이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밀러오는데, 이 행성은 달이 2개라는 점도 알아냈다. 마치 달 하나를 하늘에 Ctrl+c, Ctrl+v 해서 하나 더 붙여넣기 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무늬가 좀 다르긴 하였다.
민지도 여기 달이 2개인 걸 보고는 지구의 달과는 다른 묘한 느낌을 준다며 감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