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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글/저곳 어딘가에

저곳 어딘가에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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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사장님, 안녕하세요."

근처 건어물 가게에서 주인 아주머님이 오셨다. 그 분은 시장 상가 번영회 회장직을 맡고 계신 분이시라 번영회 공지 사항을 전달하러 온 것이라고 현식은 짐작하고 인사했다.

"아! 회장님, 안녕하세요. 요즘 가게는 잘 되시죠?"

"그럼요.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책들을 보고 실천했더니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알려드릴게 있어서 왔어요."

"무슨 일이신지..?"

"이제 가을로 슬슬 접어들었잖아요. 이번에 우리 시장 전체 분위기도 좋고 해서 가을맞이 시장 상인 단합회를 하면 어떨까하고 상가 사장님들께 설문조사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장님 의견은 어떠신가 하고요."

"이야~ 저는 찬성입니다. 사장 사장님들과 요즘 그런 모임도 뜸했었는데, 상인 단합도 할 겸 즐거운 추억도 만들 겸 좋죠."

"하하, 그렇잖아도 지금 거의 대부분 사장님들이 찬성하시더라고요. 그럼 내일 저녁 7시에 우리 상인회 건물 있죠? 거기서 사장님들이 모여서 자세한 일정 짜기로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저녁 때 뵙기로 하겠습니다."

회장님이 나간 후 나리가 현식에게 물어보았다.

"오빠, 여기에 상인회도 있었어? 몰랐네."

"어... 있었어. 잘 활동을 안 해서 그렇지. 하하. 나도 이래뵈도 저번 회장 선거에서 후보에도 올랐어."

"근데 떨어졌구만~ 크크"

"아~ 네~ 3등으로 떨어졌습죠.."

라고 현식이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7시 현식은 가게를 나리에게 잠시 맡기고 회의에 참석했다. 거기에서 회의한 결과 단합회는 2주 후에 하고 체육대회 종목은 남녀 혼식 족구대회와 탁구대회를 하기로 했다. 탁구대회는 남성부, 여성부로 나누어서 하기로 했고, 우승은 각 1명당 상금 100만원 2등은 50만원 3등은 30만원 4등은 15만원의 상금을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노래자랑 대회도 열기로 하였는데, 우승 상금 역시 체육대회와 동일하게 하기로 했다. 다만 노래자랑 대회 상금은 1명당이 아니라 팀 전체에게 주는 것으로 솔로로 나가서 우승하면 100만원 다 가지는 것이고 2인이 나가면 50만원씩 둘이 나눠 갖는 형식으로 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현식과 나리는 각각 탁구대회에 나가기로 하고, 또 듀엣으로 노래자랑 대회에도 참가하기로 했다.

 

현식과 나리는 사실 탁구대회는 그냥 참가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주변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 운동신경 좋으신 분들이 워낙 많으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리야.. 나 고백할 게 있는데, 나 사실 운동신경 꽝이야. 군대에 있을 때에도 족구 못한다고 고참들한테 갈굼 많이 당했다구.. 이번 체육대회는 그냥 참가에 의의를 두려고.."

"오빠, 나도 고백할 게 있는데, 나는 운동신경 개꽝이야. 나 솔직히 노래는 자신 있거든. 대학 때도 나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도 했었어. 근데 운동은 진짜.. 지렁이도 나보다 운동 잘 할 듯.."

"어흑.. 이 저주 받은 몸뚱이..."

"오빠.. 그래도 모텔만 들어가면 운동 잘 하잖아. 그럼 된거야..(현식의 어깨를 토닥토닥)"

"...이거 칭찬 맞지?"

"그럼 그럼" 

..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이 둘은 노래자랑 대회는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현식도 젊은 시절에는 한 때 노래로 여자를 여러번 꼬신 경험이 있었고, 본인이 말했지만 나리는 대학 때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둘은 가게가 끝나면 노래방에 들러서 한시간은 연습을 하였다. 곡명은 '우리 사랑 이대로'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오빠, 노래 생각보다 되게 잘 한다. 나야 대학 때 밴드 동아리에서 활동도 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쳐. 오빤 슈스케 같은데라도 나갔으면 인생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는데~?"

"에이~ 무슨.. 그냥 취미로 하는 거지. 사실 내가 소싯적에 주위에서 노래 잘 한다는 소리는 좀 많이 듣긴 했지. 하핫"

현식은 그 성대로 여자 꼬시고 다녔다는 소리는 차마 못 하겠고, 그래서 그냥 주위에서 노래 잘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라는 표현정도로 순화해서 말했다.

"그나저나 역시 밴드 보컬...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네. 노래할 때 네 목소리가 꼭 윤하 있지? 걔랑 진짜 비슷하다. 어메이징 하더라 진짜.. 짝짝짝."

"어쨌든 이번에 100만원 걸린 거 알지? 오빠, 우리 노래할 때 삑사리 안나게 조심하자구. 내일모레야. 드디어..."

필승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드디어 상가 단합회가 있는 날이 왔다.

오랜만에 상가 회원님들을 영업장이 아닌 곳에서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모두들 상금 때문인지 화이팅이 넘쳤다.

 

예상대로 탁구대회에서는 현식, 나리 모두 1회전 광탈이었다. 그리고 우승은 남자부 빵집 가게 주인 아저씨, 여자부 우승은 화장품 가게 점원 아가씨였다. 하지만 나리와 현식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탈락할 거 빨리 탈락하고 노래자랑 대회 준비하자는 작전이다."라고 정신승리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 듀엣은 이제 노래 자체 연습이라기 보다는 표정연기 같은데 역점을 두었다. 아무래도 그냥 하는 것보단 약간의 퍼포먼스가 있는 것이 더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리야. 여기서는 손으로 내 얼굴을 스윽 쓸어내리듯이.. 옳지.. 그렇게.. 이게 어때?"

"아.. 그건 좀 느끼한데. 그러지 말고 내가 그냥 마이크 잡은 두 손 모으고 오빠를 지긋이 바라보는 건 어때?"

"그게 나을려나? 그러자. 그럼."

그리고 둘이 조만간 결혼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던 주변 상점 주인들과 점원들은 현식과 나리에게 축하한다고 결혼식 참석하겠다고 덕담을 건네주기도 했다.

 

어쨌든 둘은 노래 부를 차례가 돌아와서 무대에 올라 노래 반 연극 반 같은 감동의 무대를 펼쳤다.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말 애절한 연인 같은 연기를 한 둘은 역시나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등을 얻어서 압도적 우승을 거두었다.

 

시장 상인들은 축하해주었고, 특히 효미와 미래 장인 두만이 기뻐해주었다.

그런데, 시장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한 남자가 물끄러미 효미를 뒤에서 바라보다가 다시 사라졌다. 과연 누구일까? 효미도 눈치 채지는 못했다. 은희조차도 미쳐 거기까지는 경계하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은 둘이 애절한 퍼포먼스를 하며 [우리 사랑 이대로] 이런 노래하는 거 별로 구경하고 싶지 않아서, 동네 당산나무 할머니 마을 수호신이랑 수다 떨고 있었다.)

 

대략 이런 수다였다.

 

"처자... 이번에 살아생전 신랑이랑 거기 점원 아가씨가 같이 노래 부른다며? 그거 구경하러 가지 그래?"

"아휴~ 제가 거기 껴서 뭐 하게요? 재밌게 놀겠죠. 뭐~ 저는 일단 선곡부터 맘에 안 들어서 안 갈래요. "우리 사랑 이대로?" 와~ 나 살아있을 땐 같이 노래방 가서도 그런 노래 안 불렀어요."

"그럼 뭐 불렀는데?"

"그대 안의 블루요."

"그건 또 무슨 노랜고?"

"사랑~은 아니지만~ 우리의 만남~ 어둠은 사라지네~ 워우워~... 이런 노래 있어요. 나한테는 '사랑은 아니지만'이고 걔한텐 '우리 사랑 이대로'래.. 나 참~ 솔직히 좋은 마음으로 축복해줬는데 아직 제가 집착을 다 놓지 못했는지 가끔 질투 나는 거 있죠?"

"그래도 이미 자네나 나나 산 사람의 영역을 벗어났어. 얼른 정신 다 잡고, 자네도 빨리 환생해서 더 좋은 인생 살아봐야지."

"네.. 그래야 되겠죠? 근데 할머니는 언제부터 여기 마을 수호신이 되셨어요?"

"내가 실은 300년 전에 이 마을에서 소문난 오지랖쟁이였어. 이 마을에 있는 이 집 저 집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내가 다 참견하고 해결하고 다녔지. 크크 그랬더니 죽어서 천계에서 높은 대신 한 분이 오시더니 "너는 이 마을에 공로가 많으니 새 마을 수호신으로 임명하노라." 라고 하시더라고. 그 다음부터 300년 간 수호신 노릇을 하고 있는 게야."

"아~ 그렇구나. 마을 일을 하다가 돌아가시면 마을 수호신이 되는 거였군요. 그러면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죽으면 나라 수호신이 되는 거네요?"

"맞아. 그래서 이순신 장군도 남해 바다 수호신이 되셨잖아. 그리고 임무를 다 하고 그를 기억하고 숭배하는 사람들의 집착줄이 다떨어지면 윤회의 길을 가는 거지. 나도 이제 슬슬 윤회를 새로 할 시간이 된 것 같애. 얼른 후임을 뽑아야 되는데, 요즘 사람들은 다들 개인주의라서 이거 뭐 마을을 위해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요."

"아하~ 그게 그렇게 되는구나. 그럼 그런 수호신 같은 거 하면 윤회할 때 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다든가 하는 게 있나요?"

"어느 정도 가산점은 있다고 알고 있어. 꼭 좋은 집안에 태어나지 않아도 큰 복을 타고 나기도 하고 말야. 예를 들어 그리스 있잖아. 거기 포세이돈 할배. 그 할배가 숭배하는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난 후 다시 윤회한 게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 잖아. 그리고 번개 신 제우스가 환생한 게 니콜라 테슬라야. 올림푸스 신 노릇할 땐 그렇게 여자 밝히더니 테슬라로 살 땐 여자 안 밝히더라고. 일종의 속죄 비슷한 거지. 그런데 자기가 최고신이라는 자부심은 환생하고도 여전했는지, 그 성깔머리는 테슬라로 살 때도 여전하더라고. 어쨌든 제우스 테슬라는 인류에 큰 공헌을 한 것을 인정받아서 윤회를 완전히 끝내고 천계로 완전히 올라가서 이제 다시는 윤회하지 않게 되었지. 진짜 영원한 신이 된 게야."

"윤회도 영원히 하는 게 아니라 끝도 있나봐요?"

"그럼~ 마지막 일생이라는 게 있어. 그 마지막 일생을 세상사람들을 위해 자기 한평생을 완전히 불살라야지 높은 천신이 될 수 있는 게야."

"이야~ 이런 걸 살아있는 동안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자네도 이번에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집착을 떨어버린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서 지금 나한테 배운 지식들을 무의식 중에라도 알고 있을 거야.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구.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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