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날을 잡아서 가게는 조금 늦게 열기로 하고 나리와 현식은 신혼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을 둘러보러 외출하였다. 우선 나리가 그렇게 바라던 8k TV에 AI 스피커도 둘러보고 냉장고, 세탁기 등도 둘러보았다. 물건들을 둘러보니 벌써 신혼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둘은 침대 코너로 가서 침대를 둘러보았다.
"나리야. 여기 안아봐. 진짜 푹신푹신하다."
현식이 한 침대 위에 앉아서 엉덩이로 방방 뛰어보았다. 나리도 침대에 앉아서 엉덩이로 방방 뛰어보니 정말로 쿠션감이 좋았다.
"오오~ 진짜네~ 이거 어느 회사 침대야? 베이스? 오~ 좋구만..."
그때 현식이 나리 어깨를 확 감싸며 말했다.
"좋아? 벌써? 진짜 좋은 건 아직 안 나왔습니다만.."
현식의 음흉한 미소를 본 나리는 웃으면서 현식을 가볍게 밀치며 일어났다.
"아.. 이 아저씨.. 진짜~ 으휴~"
라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른 침대도 둘러보자." 면서 현식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제 막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 무언가에 미끄러졌는지 발을 헛디디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리가 갑자기 획 앞으로 넘어지면서 현식의 품으로 쓰러졌고, 그걸 지켜보던 현식은 너무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서 몸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둘은 침대 매장에서 입술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주위에서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 중 피식 웃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둘은 그다지 창피하진 않았지만 황당하고 웃겼다.
"오구~ 나 보고 맨날 변태 같다더니, 네가 진짜 변태네. 캬캬캬 정체를 들켰어. 한나리~"
라고 현식이 나리를 놀렸다. 그러자 나리가 어처구니없어하면서
"나 참~ 실수로 넘어질 뻔한 거 가지고 치사하게 트집 잡기냐?"
라고 따졌다. 하지만 나리는 마음속으로는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디 미끄러질만한 요소가 없었는데, 발을 헛디딘 것 같지도 않았는데 왜 갑자기 넘어질 뻔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큰 일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갔다.
펙트는 이러했다.
현식의 전처 은희의 영혼이 둘을 따라온 것이었다. 원래 따라올 때는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었다. 죽은 자신을 볼 줄 아는 효미도 말했듯이 은희는 아직 현식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현식이 빨리 자기의 기억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래서 쭉 나리와 현식을 응원하고 있었으며 둘이 잘 되길 축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둘이 너무 알콩달콩한 것을 보니 살짝 시샘이 난 것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밀어줄 거 확실히 밀어주자는 생각에 장난끼 섞인 이벤트로 나리의 뒷통수를 친 것이다. 사실 은희는 물질적인 육신이 없으므로 실제로 나리에게 물리적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고, 은희 영혼의 에너지가 나리 영혼 에너지에 영향을 끼쳐 나리의 정신을 살짝 헷갈리게 하여서 잠시 균형감각을 잃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둘은 이번엔 나리의 로망이라는 웨딩 드레스 입어보기를 하러 갔다. 웨딩 드레스를 한벌 골라입고 나타난 나리의 모습은 현식의 눈에는 여신이었다. 현식은 미치도록 감탄스러워서 의자에 앉아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근데 도대체 누가 디자인한 건지는 몰라도 저게 수영복인지 웨딩 드레스인지 게임에 나오는 여전사 갑옷인지 정체성을 알 수가 없었지만, 나리의 원래 크고 탄력 넘치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정말 현식이 침을 질질 흘리게 만들었다. 원래 홀라당 다 벗은 몸보다 저렇게 옷 사이로 드러나는 몸이 더 섹시해 보이는 법. 솔직히 현식은 하반신에 피가 몰리는 걸 느꼈고, 혹시 거시기가 부풀어올라 사람들이 그걸 보면 개망신 당할 것이 뻔한지라 숨기기 위해 의자에 얼른 다시 앉았다.
나리도 그런 야한 드레스를 입은 것이 살짝 부끄러운지 현식에게
"이... 이거 너무 야하지 않아?"
라고 홍조를 띈 채 수줍게 물었다. 현식은 그냥 너무 좋아서
"괜찮아. 우아하고 지적이고 뷰티풀하고 엘레강스 해. 딱 좋아."
라고 눈에서 하트를 연발로 발사하면서 말했다.
주위에 사람만 없다면 나리가 입고 있는 저 천조각을 훌렁 벗겨버리고 싶은 욕구를 현식은 느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아! 이미 변태로 낙인 찍힌 거, 다음에 같이 모텔 갈 때는 코스튬 같은 거 입어보라고 할까? 저렇게 입혀놓으니까 솔직히 너무 섹시하다. 오우야~"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식의 이러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는 또 한 사람.. 아니 한 때 사람이었던 존재가 있었으니, 아까부터 따라온 은희였다. 영혼은 청각기관이 없어서 실제 음파로 된 소리를 듣지는 못해도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이 뿜어내는 일종의 주파수를 통해 그걸 느끼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기에 현식의 음흉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으며 현식의 눈을 통해 본 나리의 시각적 이미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때는 자기 신랑이었던 현식이 나리에게 침을 질질 흘리는 걸 보자 아까보다 조금 더 은희는 약이 올랐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기가 산 사람 세계에 계속 관여하는 건 산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으며, 자신에게도 하늘나라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참았다.
아. 은희가 이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은희도 망자 경력이 이제 벌써 3년이 넘었다. 주위에서 다른 망자들이 하는 걸 자기도 쭉 관찰해보니 대략 어떤 자들이 300년이고 1000년이고 이 이승계에 발목이 잡혀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는지, 어떤 자들이 수월하게 하늘나라로 올라가는지 알게 되었다. 자동으로 공부가 된 것이다. 집착은 족쇄와 같다. 그렇기에 강한 집착은 무거운 족쇄와 같다. 따라서 집착이 강한 영혼은 오랜 세월동안 지저분한 탁기만 뿜어내면서 이 지상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러나 집착을 많이 떨어낸 영혼은 떨어낸 집착의 무게만큼 홀가분해지고 가벼워져서 수소나 헬륨이 든 풍선이 자동으로 하늘 높이 올라가듯 스스로 저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은희가 아직 지상에 있는 이유도 바로 남편과 딸에 대한 미련, 집착이 있어서이다. 그렇기에 은희는 현식이 새로운 사랑을 만나 행복해하고, 효미도 그런 가정에서 행복해하는 장면을 단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모든 집착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갔았다. 그래서 은희는 계속하여 나리와 현식을 엮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망자의 영혼신만 만나고 다는 것이 아니라, 산신이나 하천신, 관공서를 수호하는 신 같은 상급신들도 몇번 만난 적이 있는 은희는 그들로부터 하늘나라도 단일 세계가 아니라 몇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배우게 되었다.
집착이 더 없는 영혼이나 살아생전에 자신이나 자기 가족, 자기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 사회, 나라, 전인류를 위해 큰 삶을 살았던 영혼이 더 높은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그 배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쨌든 웨딩 드레스까지 본 은희는 오늘은 계속 둘을 따라다니면 그간 나름 노력으로 많이 떨어냈던 집착이 역주행으로 더 쌓을 것 같아서 자기랑 친한 경기도 어디에 있는 당산나무 신이랑 수다 떨려고 갔다. 그리고 현식과 나리는 이제 가게를 열기 위해서 동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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