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와 나는 다시 우리가 머물고 있던 도서관 건물로 돌아와서 다른 층들도 쇼니와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쇼니가 묘제 누님과 바잔 형님이 돌아왔으니 다시 1층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도서관으로 돌아가서 형님과 누님을 만났다. 두 분은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요원들의 정식 제복이라고 하셨다. 본부에 다녀오느라 간만에 제복 입었다면서 우리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본주 윗선에서 명령이 떨어졌는데, 축하해. 너희들 우선 요원 자격 1단계는 통과되었대."
라고 묘제 누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박수 쳐주셨다. 바잔 형님은 한자로 "正"자 비슷한 무늬가 있는 금색의 배지(badge)를 민지와 나에게 주셨다.
"이건 준요원용 배지야. 이걸로 언제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단다. 연락하는 방법은 그냥 배지에 손이든 발이든 너희 피부 어딘가에만 닿은 채로 마음 속으로 우릴 찾기만 해도 우리와 연락을 할 수 있어. 신기하지? 너희가 정식 요원이 되면 무지개 스펙트럼 같은 빛이 나는 은백색 배지로 교환해 줄거야. 그건 우리와 연락하는 기능 말고도 본부와도 직접 연락이 되는 기능도 있지. 앞으로 3년간 너희를 더 지켜보면서 최종 결정을 내겠대. 그런데, 걱정말라구. 나랑 묘제가 스타급 일타 강사 수준이라 우리가 맡은 요원 후보자들이 170년 동안 400명이 좀 넘었는데 그 중 불합격자가 3명 밖엔 없었다구. 합격률 99% 이상을 자랑하지. 하하"
민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근데 그 요원이란 거 꼭 해야 되는 건가요? 사실 뭘 해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세상 살아가는 원리 같은 법칙만 배우고 요원이 해야 할 일 같은 건 배운 적이 없잖아요."
묘제 누님이 답변하셨다.
"아. 그건 우선 너희가 최종 합격이 되면 배울거야. 최종 합격도 안했는데 요원 교육을 시키면 요원이 아닌 자에게 우리의 기밀 사항을 누출시키는 셈이라서 말이지. 그건 좀 양해를 구할게. 대신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최종 합격이 되면 일단 너희는 우리 세계와 같이 협업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성공이 120% 보장된 사업을 할 수 있다구. 내가 민지 너에게 지구랑 뷰티 사업하지고 한 거 헛말 아니야. 너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두고 준비 철저하게 해 놔. 나중에 '언니 미안해요. 준비 하나도 못했어요.' 이러면 내가 너 맴매할 거야. 한서도 마찬가지로 아직은 우중충 사업을 같이 할 수는 없지만 3년 후 우리 조직의 정식 요원이 되면 진짜로 사업할 거니까 준비 잘 해 둬. 경영 공부 같은 것도 틈틈이 해두고. 한서 네가 우중충 사업에 진지한 것 같길래 우리가 윗선에 정성스레 보고해놔서 승인은 될 거야."
아.. 당장은 아니고 3년 뒤구나. 괜찮다. 그 사이 나도 준비하고 있어야지.
"넵. 감사합니다. 형님, 누님"
하고 꾸벅 인사드렸다.
민지는
"그래도 저는 아직 사업 같은 거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무서워요. 언니. 좀 많이 도와주세요. 저는 사업은 커녕 오빠처럼 회사도 한 번 다녀본 적 없단 말이예요."
묘제 누님이
"에헤~ 걱정하지 마. 우리가 팍팍 밀어줄게. 돈 워리. 절대 망할 일 없으니까 걱정마. 망하고 싶어도 못 망하게 해줄게."
라고 큰소리 치셨다. 근데 정말 망할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잔 형님이 한숨을 쉬시면서
"하아.. 근데 우리가 전에 너희에게 앞으로 두 세 가지 정도 힘든 일이 올거라고 했지? 그게 무슨 일 인지는 몰라도... 본부 간 김에 우리 울트라 컴퓨터로 예측을 해봤거든. 그랬는데 좋은 소식은 두 세 가지에서 한 두 가지로 너희가 겪을 힘든 일의 수가 줄었다는 거야. 그냥 두 가지 힘든 일이 생긴다고 봐야지. 그리고 두 번째 힘든 일은 아직 예측이 불가능한데, 첫 번째 힘든 일은 확률 52%로 나온 게 있어. 그게 뭐냐하면.. 민지한테 일이 생길 거야. 그래서 너희 둘이 고생 좀 해야 할 거야."
나와 민지는 둘 다 깜짝 놀랐다.
"민지에게 무슨 일이라뇨? 민지가 어디 아플 일이 생기는 건가요? 민지에게 사고나 나나요? 뭐죠?"
내가 다급하게 말했고 민지도 황당하다는 듯 눈을 땡그랗게 뜨며
"무슨 일이라뇨?"
라고 물었다.
묘제 누님이
"흠... 민지야. 너 예전 어릴 때부터 귀신 같은 거 잘 본다고 했지?"
"네. 어릴 땐 그랬는데.. 지금은 거의 안보여요. 귀신이 저 잡아가겠다고 그러는 건가요? 주온 같은 영화처럼?"
"잘은 몰라도 민지 너 주변에 너에게 자꾸 빙의를 시도하는 여자 귀신 하나가 있다고 컴퓨터 계산 결과가 나왔어. 그러니 정말 조심해야 돼. 너의 수호령들이 방어는 해주겠지만, 그 수호령들도 사람처럼 가끔 방심하는 경우가 있어서 너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돼. 그리고 한서야. 민지에게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배지로 우리에게 바로 연락하렴. 알았지? 우리도 틈나는 대로 너희를 지켜보고 있겠지만 말야."
바잔 형님이 박수를 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셨다.
"자자~ 아직 안 일어난 일에다가 일어날 확률이 겨우 50% 살짝 넘은 일 가지고 벌써 심각해지지 말자구. 수업시간에 배웠지? 감정도 에너지인데 감정이 어두워지면 어둡고 암울한 에너지와 경험이 펼쳐질 확률이 높아진다구.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하자. 우선 너희에게 배지부터 달아줄게."
라고 배지를 그냥 우리 상의 위에 붙이셨는데 그게 자석처럼 착 달라붙었다. 묘제 누님은 그 배지가 인체 에너지에 반응해서 우리 피부에 붙은 건데 냉장고에 자석이 붙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하셨다.
Chapter 8.
그리고 좀 쉬었다가 이상적인 사회에 대하여 수업하자고 하셨다.
이상적인 사회의 모델은 아직 이 행성 리쥬도 도달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인데 이 우주보다 더 발전한 다른 우주의 행성에서 이룩한 사회라고 하셨다.
그 우주의 행성 이름은 '먀코(Myako)'인데 노동자 계층도 없고, 자본, 사유 재산 같은 건 있긴 있으되 별 의미가 없는 사회라고 하셨다. 아직 이 리쥬도 그 단계까지는 진입 못 했는데 그 행성에서는 그걸 이루어냈다고 하셨다.
바잔 형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지구에도 예전에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사상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마르크스가 예측 못한 것이 있어. 그건 공산이라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그것이 가능하다라는 걸 예측 못한 것이지. 노동자 계급의 세상이 되더라도 그 노동자 계급 안에서 또 수많은 계급이 분화될텐데 무슨 소용이 있니? 그냥 계급이란 것 자체가 사라져야 마르크스가 꿈꿨던 이상사회가 가능해지지. 그러면 어떻게 하면 노동자 계급이라는 것이 없어지느냐.. 모든 사람이 노동에서 완전하게 해방되어서 모두가 지적인 연구원, 과학자, 사회학자 등 각자가 타고난 소질을 갈고 닦아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할 때 가능해지지.
그러면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생기지.
첫째 어떻게 모든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킬 것인가? 둘째 어떻게 각자 타고난 소질을 찾아내고 또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전에 올바른 방향이란 어떤 방향을 말하는 것인가. 라는 것이지.
첫째 노동에서의 해방은 결국 인간 대신 다른 존재가 인간의 일을 해줘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로봇과 인공지능의 힘으로 가능하단다. 우리 리쥬에서도 이것은 이미 이루었지. 너희 지구에서도 이제 막 그런 길로 접어들고 있고 말야. 마르크스의 한계는 이것이었어. 하긴 그것도 무리는 아니지.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에 어떻게 인공지능이니 로봇이니 안드로이드니 라는 걸 상상이나 했겠니? 그러니 인간을 아예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그 시대에는 할 수가 없었지.
그런데 이 두번째가 문제야. 우리 행성 리쥬도 여기서 아직 막혀서 '먀코'와 같은 사회로 진입은 못했거든. 먀코의 지도층들과 연구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홍익인간'과 '공도사상'의 길을 제시했단다. 우리 모두는 결국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할 때 진정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라는 것이지. 사실 너희 세계에서도 모든 직업은 따지고 보면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어?
예를 들어 식당 주인과 종업원은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기분 좋은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회사원은 자기 회사에서 만든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제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다만, 자기가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이타적인 일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자꾸 망각한 채 자기 자신과 자기 조직의 이익에만 촛점이 기울어지는 문제 때문에 사회에 자꾸 문제가 생기지.
그래서 먀코 행성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육에 집중했단다. 그리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어릴 때부터 자기의 타고난 소질을 찾고 그 소질을 바탕으로 새롭고 이타적인 무언가를 창조하는데에 온 사회가 지원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지. 그리고 무엇이 바른 길이고 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 원리를 가르치는데 소흘히 하지 않는단다.
그렇기에 그 먀코 행성은 우주에서 몇 안되는 유토피아 행성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우리 리쥬 행성도 아직은 그 단계까지는 완전히 진입 못했지만, 한쪽 발 정도는 담그고 있다고는 할까? 머지않아 우리도 그런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너희 지구도 빨리 그런 홍익인간의 세계로 진보하길 바란단다. 하지만 더 빨리 그런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보한 다른 우주의 도움을 받아야 용이할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너희를 우리 요원으로 뽑으려고 하는 거야. 앞으로 너희 말고도 요원들을 더 많이 충원할 계획이야. 수백 수천년을 지구 요원을 비밀리에 임무를 맡기고 행하게 했는데, 이제는 너희도 많이 지적인 사회로 진화했기 때문에 비밀은 벗고 점점 더 공개적으로 할 계획이야."
마르크스의 예언 그대로는 아니고, 비슷하지만 휠씬 높은 차원의 사회로 진입한 행성도 다른 우주에는 존재한다는 점이 놀랍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좀 더 민지와 나는 수업을 받고 끝냈다.
오늘은 저녁에 쉬면서 민지, 쇼니, 나 이렇게 셋이 고스톱 치기로 했다.
묘제 누님은 오늘은 첫사랑 말고 둣사랑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두번째 사랑 만나러 나간다고 하셨고, 바잔 형님은 오늘도 길드원들이랑 신나게 레이드 뛸 거라고 하셨다.
민지와 나는 우리 주머니에 있는 돈을 이 행성 돈으로 바꿔서 고스톱을 쳤다.
아... 쩜100짜리 쳤는데 민지는 1만5천원(한국 돈으로 계산한 금액) 털리고는 재미 없어서 안한다고 일어나 이 행성에서 해주는 음악방송을 보러 갔다. 그 뒤로 쇼니와 계속 고스톱 치면서 민지는 뭐하는지 궁금해서 슬쩍 보니까 이 행성 음악에 제대로 꽂혔는지 뮤직비디오 같은 거 보면서 혼자 리듬 타고 그루브 타고 난리났다.
그리고 나는 민지에게 '민지 네가 잃은 돈 내가 다 따줄게!'라고 큰소리 빵빵 치면서 쇼니와 계속 맞고를 쳤으나 그 뒤로부터 잃은 것만 3만원이 넘었다. 그 전에 잃은 것까지 더하면 한 5만원이 훨씬 넘지 않을까 한다. 쇼니는 절대 손모가지 날아갈 구라도 친 적 없고(원래 넌 손목이 날아다니잖아~ -_-;) 밑장빼기 같은 것도 안했다고 하는데, 도저히 못 믿겠다.
쇼니는 그냥 로봇이 아니라 고성능 인공지능 로봇이 아닌가. 또한 그 손! 화투장 셔플 할 때 공중에 둥둥 떠있는 손의 그 현란한 움직임을 보면 정말 카드 마술쇼를 보는 듯 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강력한 심증은, 아니라고 발뺌하면서도 입꼬리가 미묘하게 살짝 올라가는 쇼니의 표정을 내가 봤다는 것이다. 고성능 안드로이드라도 포커페이스가 안될 수도 있다는 걸 특이한 방식으로 알게 되었다.
오늘의 교훈 : 인공지능이랑은 체스도 바둑도 고스톱도 같이 하면 안된다.
고스톱 후기 : 쇼니가 나랑 민지한테서 탈탈 털어간 약 7만원 상당의 금액은 어찌 되었느냐 하면..
피자랑 치킨 배달시켜 먹는데 썼다. 쇼니가 그래도 참 착한 게 자기는 어차피 화폐라는 것이 필요 없다면서 우리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라도 선물을 해줄 수 있어서 기분 좋다고 했다. 그냥 자기는 안드로이드용 음료 1.5 리터만 있으면 된단다. 쇼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포도맛으로.. 그것도 시켜도 되냐길래 어차피 쇼니가 다 따간 돈이었으니까 당연히 된다고 했다. 안드로이드용 음료 한 병 시켜도 된다니까 감정도 느낄 줄 아는 우리 귀요미 안드로이드 쇼니는 '헤헤' 소리를 내면서 밝게 웃었다. 그렇게 해맑게 웃는 쇼니는 처음 본 것 같았다. 웬만한 진짜 인간보다 더 착하고 순수한 안드로이드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 됐든 저찌 됐든 오늘도 리쥬의 하루는 훈훈하게 끝났다.
-이 소설을 쓰는데 큰 영감을 주신 천공 스승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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