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방으로 다시 들어갈 때쯤 쇼니가 말했다.
"두 분의 신체 사이즈를 스캔하여 이미 체형에 맞는 의복들은 몇 벌 준비해 두었습니다. 방에 들어가시면 옷장 안에 옷들이 있을 거에요. 저는 옆에서 두 분이 옷 입으시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쇼니야. 고마워."
라고 민지가 말하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옷장처럼 보이는 사물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니 옷장 문이 열렸고 거기에는 여러 벌의 옷이 있었다. 죄다 영화에서 많이 봤던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스타일의 옷이었다. 그래. 역사공부하는 셈치고 한번 입어보자 싶어서 그래도 제일 덜 불편해 보이는 놈으로 골라서 입었다. 입고 나서 거울을 보니 역사책에서 보던 개화기 초기 남자 양복같은 분위기가 났다.
중절모는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썼다. 그랬더니 민지가 한번 써보라고 우겨서 썼더니,
"오빠, 벗어. 정말 안어울린다. 쿠쿠"
라길래 바로 벗었다. 난 모자랑 별로 안 친한 팔자인가보다. 내가 모자가 잘 안 어울린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머리 안 감았을 때 말고는 모자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민지도 옷을 갈아 입었는데, 혼자 입기는 어려웠는지 쇼니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입었다. 잘록한 허리에 통이 넓은 긴 치마, 영화에서 보던 그런 무도회장 공주풍 비슷한 옷을 입고, 길고 윤기나는 머리 뒷쪽에는 커다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솔직히 정말 내 여자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넋이 빠질 정도로 예뻤다. 드라마 같은데서 보면 남자 배우가 여자친구랑 웨딩드레스 맞추러 샵에 갔다가 여자친구가 웨딩 드레스 입고 나오면 '우와~'하면서 넋 나간 표정을 짓고 하던 장면을 그냥 시큰둥하게 바라봤었는데,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이지 '우와~'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예전부터 민지한테 반했었는데 민지에게 또 반할 것 같았다.
민지도 내 표정을 읽었는지 활짝 미소지으며
"오빠 나 예뻐?" 라고 하면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치마가 샤르르 넓게 펼쳐지니 꽃잎이 활짝 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저
"응. 정말 예뻐. 너무 예뻐서 나 지금 미칠 것 같애."
라는 말 밖에는 못했다. 그 우아한 장미같은 모습을 감상하느라 더 멋있는 말 같은 건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민지는 내 말에 꺄르르 웃으면서
"미치지는 마. 오빠~. 오빠도 멋있어."
라며 나에게 팔짱을 끼었다. 그러면서 쇼니에게
"쇼니양~ 우릴 안내해주시겠어요?"
라며 귀족집 딸 같은 흉내를 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꽉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쇼니도 민지에게 장단 맞춰주면서
"네, 저를 따라오세요. 아가씨~" 라며 우릴 안내했다.
우리는 쇼니를 따라서 밖에 나가니 길에는 사람들이 몇 명만 걸어다니고 있었고, 자동차는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행성에서 자동차는 죄다 하늘에 떠다니니까 말이다. 쇼니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 1분도 걸리지 않아서 도서관 건물 모퉁이를 돌아 공중에 20cm정도 떠서 우리쪽으로 다가오는 자동차 같은 것이 보였다.
"어? 바잔 형님이 태워주셨던 그 비행접시랑은 다르게 생겼네?"
라고 내가 말했다. 쇼니는
"그건 '앙카'라고 하는 기종인데 행성 내 이동은 물론이고 태양계 내 행성간 이동까지 할 수 있는 거예요. 대기권 밖에서는 아광속까지 속력을 낼 수 있는 굉장한 녀석이고, 가격도 꽤 비싸답니다. 지구로 치면 소형 요트 1.5척쯤 되는 값어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마 바잔님의 보물 1호일걸요?
바잔님이 맨날 묘제님한테 맞고 살아서 어리버리하게 보여서 그렇지, 업무에 있어서는 꽤 능력자라 월급쟁이 치고는 상당한 고액연봉자에 속하거든요.
우리가 탈건 '샤르'라고 하는 기종인데 지구의 자동차나 버스 비슷한 디자인입니다. 저건 행성 내 이동 밖엔 못해요. 그리고 은하계 이상의 거리나 다른 차원의 우주로 이동할 때는 '부코히'라는 기종을 이용하는데, 그건 한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업차원이나 정부차원에서 구매가 가능한 가격대입니다. 우주선의 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건 워프기능에 탈광속기능, 거기에 차원이동도 되기 때문에 엔진 자체가 아예 달라요. 여러분들이 지구에서 종종 본다는 UFO가 아마 우리 세계의 부코히이거나 다른 우주의 부코히급 우주선일 겁니다. 여기 우주보다 더 진보한 다른 우주는 그런 부코히급 우주선이 상용화되어 아무나 구매해서 탈 수 있는 곳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라고 설명해주었다. 설명해주면서 쇼니가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허공에 화면을 띄워서 기종별 모습까지 입체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샤르'를 타고 도시의 상공을 날아올랐다.
"이 도시 이름은 '아소브(Asob)'라고 하는데 고대어로 '큰 닭'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행성에서 9번째로 큰 도시이고, 화끈한 댄스클럽의 도시로 유명해요. 매해 여름에는 화끈한 댄스 페스티벌로 며칠간 여름밤엔 정말 볼 만해요. 도시 전체가 클럽 같죠. 다른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로 아소브가 넘쳐나죠. 지금은 그 기간이 아닌 것이 아쉽네요. 어쨌든 우리는 지금 아소브의 중심지로 관광 갈 거예요."
라고 쇼니가 설명해주며, 나와 민지는 샤르에서 아래에 드넓은 도시의 시가지를 감상했다. 여기가 워낙 과학기술이 진보한 곳이라 SF 영화 속 도시처럼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풍경을 상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고, 초고층 빌딩과 딱봐도 옛날풍의 건물같은 건축물과 넓은 광장, 넓은 초록 숲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도시규모는 꽤 큰지 시가지가 지평선 끝까지 닿아있는 듯 했다. 그리고 공중에는 샤르나 앙카가 줄을 지어 날고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보니 내가 문득 궁금해서 쇼니에게 물었다.
"근데 여기에도 교통법규가 있나봐? 차들이 줄지어 날고 있는 걸 보면.."
"네. 있긴 있습니다만, 거의 대부분이 자동항법으로 날고 있기 때문에 교통법규는 사실 신경 안쓰고 살아요. 도시 내 중앙제어본부에서 가장 효율적인 운행을 각 탈 것의 컴퓨터에 지시내리고 있어서 그냥 알아서 간답니다. 물론 수동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데 급한 경우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귀찮게 수동은 잘 안 하죠. 그래서 저도 지구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제일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음주운전 단속이었어요. 우린 그런 게 없거든요. 그냥 자동항법으로 가면 알아서 집까지 가는데 술을 먹고 차 안에서 기절을 하든 차 안에서 오바이트를 하든 상관 없거든요. 혹시나 샤르의 자동항법장치가 고장나면 그것도 중앙제어본부에서 감지해서 견인 샤르가 나타나 안전한 곳에 주차시켜주고요."
쇼니가 계속 이곳 소개를 해주는 동안 초고층 빌딩이 밀집해있는 곳이 보였다. 아마 저기가 중심지인가보다.
민지가
"쇼니야. 다 왔어?"
라고 물으니, 쇼니가
"네. 저기 높은 빌딩이 많이 있는 곳 보이시죠? 저기입니다. 두 분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아까 몽실이에 들어가서 자각몽 훈련하신다고 체력 소모가 크실텐데.."
라고 했다. 내가 여기 메뉴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니 일단 지구의 유럽풍 비슷한 식당과 태국풍 비슷한 식당이 유명하다고 했고 민지는 우리가 입은 옷 분위기 상 유럽풍으로 가자고 했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 동의하자 쇼니가
지금 바로 예약했다고 했다. 하긴 전부 무선으로 다 예약을 하고 지시를 하니 굳이 음성으로 그 식당에 연락해서 예약 잡을 필요가 없긴 하지.
우리는 200층은 되어 보이는 빌딩 꼭대기 부분에 있는 통로로 들어가서 주차했다. 모든 차들이 다 날아다니니 이 세계에서는 주차장이 지하나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건물 꼭대기쪽에 있었다.
주차하고 나서 쇼니는 우리를 빌딩 내 레스토랑으로 안내해주었다.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지구의 르네상스풍에 판타지 영화 같은 느낌과 SF 영화 같은 느낌이 더해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왈츠같은 곡이 흘러나왔고 우리는 쇼니의 안내에 따라 빈자리에 앉았다. 쇼니는 우리에게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다. 앉으면서 쇼니는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누가 프로그램해놨는지 몰라도 정말 예의 바른 안드로이드였다.
우리는 메뉴판을 봐도 어차피 이곳의 문자를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쇼니가 이것 저것 안내해주었다.
민지는 랍스타와 꼭 닮은 요리와 파스타를 시켰고, 이미 우중충 매니아가 되어버린 나는 우중충 통 바베큐라는 메뉴를 시켰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라서 아무것도 안먹을 줄 알았던 쇼니도 뭔가를 주문했다. 안드로이드용 음료라는데 전기 충전과 피부재생을 시켜주는 음료라고 했다. 민지가
"그 음료 맛있어?"
라고 물어보니 쇼니가 안드로이드들도 맛을 느낄 수 있고, 나름 취향이란 것도 있어서 자기는 포도맛으로 시켰다고 했다. 자기가 만약 인간이었다면 평생 포도만 먹고 살았을 거란다. 다만 사람은 마시면 큰일 난다고 혹시나 호기심으로 먹지 말라며, 배 아픈 시늉을 하였다.
잠시 뒤 음식을 카트 로봇이 가지고 왔다.
민지의 파스타는 지구의 카르보나라와 똑같아보였고, 랍스타는 대박인게 지구 랍스타보다 일단 크기가 2배 가까이 되었다. 민지도 보자마나 '히익~' 소리를 내며 자기 혼자는 다 못먹을 것 같다며 같이 먹자고 했다.
그리고 쇼니의 음료가 나왔는데 맥주잔 크기 정도되는 유리컵에 나왔다. 투명한 보라빛이었는데 색은 참 예뻤다.
그리고 내가 시킨 우중충 통 바베큐가 나왔는데 말 그대로 우중충을 껍질채로 구워서 나온 요리였다. 쇼니가 가르쳐준대로 집게 혹은 펜치 비슷한 도구로 껍질을 쩍~! 까보니 고소한 고기향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그리고 우중충 고기는 잘 익은 듯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갈색빛을 뽐내었다.
전에도 설명했지만 우중충 맛이야, 쇠고기보다 더 맛있는 쇠고기 맛 그 자체였고, 랍스타도 지구 랍스타보다 더 맛있었다. 파스타는 지구의 것이 좀 더 나았고 말이지. 이 행성에 그래도 지구보다 더 못한 것도 있구나 싶어서 은근히 뭔가 기분 좋았다. 민지는 맛있는 걸 배 부르게 잘 먹었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쇼니에게 잘 했다고 칭찬해줬다.
아 참, 식사하면서 민지가 말해줬는데, 자기는 몽실이에서 자각몽이라는 걸 난생 처음 꿔봤다고 신기하다고 했었다. 꿈에서 어린 왕자랑 여우랑 사하라 사막을 땀 뻘뻘 흘리면서 걸어가다가 날아서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자기 몸이 공중에 떠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리고 있잖아. 내가 공중에 뜨니까 어린 왕자랑 여우가 자기도 날게 해달래.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그러니까, 여우가 "너희도 난다."라고 말하면서 자기들이 날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달래. 그러면 그대로 될 거라면서 말야. 여우가 시키는대로 했더니 정말로 왕자랑 여우가 공중에 붕~ 뜨더라구. 그 다음부터는 그냥 슈퍼맨처럼 엄청 빨리 날아서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어."
라고 민지가 말했다.
그리고 나도 솔직히 내가 꾼 자각몽을 민지에게 말했고, 특히 꿈 속에서 '여행에서 돌아와 민지 부모님을 뵐 때 제일 가슴이 뭉클한 것이 두 분께 현실에서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우리 이 행성을 떠날 때 부모님 드릴 기념품이라도 가지고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 등등 살짝 양념도 곁들여가며 이야기를 했다.
민지는 내가 한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자기 부모님을 생각해주니 기분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쇼니는 우리를 바잔 형님과 묘제 누님이 이곳에서 우리를 선정해놓고, 관찰할 때부터 자기도 우릴 봐왔었는데, 참 좋으신 분들 같다고 느꼈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같이 일도 하고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민지는 쇼니에게
"쇼니야. 네 인공지능이 엄청나다는 건 알겠는데, 감정 같은 것도 느낄 수 있니?"
라고 물었고 쇼니는 민지에게
"사람만큼 격렬하고 농도가 진한 감정은 아니지만, 저나 저와 비슷한 성능의 안드로이드들도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됐어요. 사람들과 같이 대화도 나누고, 가끔 상담도 하려면 우리도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야 인간들과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도 우리 주인이 못 되게 굴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안드로이드도 있고, 그럴 경우는 로봇 생산업체에서 감정지수를 조절한다든가 조치를 취한답니다. 저 같은 경우 바잔님, 묘제님이 좋으신 분들이라서 그럴 일은 없지만, 두분 모두 장기간 출장시에는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해요. 그럴 때는 저도 게임을 한다거나 웃기는 영화를 보면서 쓸쓸함을 달래죠. 안드로이드 스스로 감정기능을 On, Off 할 수 있게 해주면 좋으련만, 일부러 그렇게 안되게 설계해 놓아서 어쩔 수가 없어요. 안드로이드를 최초로 제작한 분의 신념이 [감정은 느끼기 싫어도 느낄 수 있어야 진짜 감정이다.]라는 것이라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한서님, 민지님 두 분이 다시 원래 계시던 곳에 가시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그리움이라고 하는 감정을 느낄 것 같네요. 그러니 묘제님이나 바잔님을 졸라서 여기 자주 놀러오세요. 아셨죠?"
라며 쇼니가 살짝 애잔한 표정을 지었고, 민지는 그런 쇼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꼭 그러겠다고 말했다. 나도 쇼니에게 공중에 떠다니는 손과의 악수를 청하면서
"알비백( I'll be back.)"
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도시 상공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바잔 형님과 묘제 누님이 타고 계시는 비행접시가 이 도시로 접근 중이라 슬슬 오실 때가 다 되어 간다고 쇼니가 말해줘서 다시 우리 집.. 아니 우리가 있던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우리 집'이래.. 벌써 여기에 정이 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