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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글/저곳 어딘가에

저곳 어딘가에 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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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식과 나리는 효미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혹시 몸에 이상은 없는지 우선 확인하고,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아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몸에 다친 곳은 특별히 없었고, 다만 효미는 납치와 화재로 인한 충격 때문인지 악몽을 가끔 꾸기는 하였다. 그래서 심리치료와 최면치료를 통하여 정신적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효미는 준모에 대한 악감정은 별로 없었다. 그 불쌍한 아저씨 앞으로 어떻게 되냐고 걱정까지 해주는 착한 심성의 효미였다. 준모는 법대로 처벌을 받을 것이고, 뉘우치는 바가 크니 그 마음을 계속 유지한다면 새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여서 일을 그르치니 그 때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준모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향타가 될 것이다.

 

호준이는 얼마 후 효미를 만나러 현식의 집으로 갔다.

"효미야. 괜히 우리집에 놀러와서 네가 그런 일 당한 것 같아서 미안해."

"괜찮아. 호준이 오빠. 난 아무렇지 않아. 오빠는 잘 지냈어?"

호준이는 흰 토끼 인형 하나를 효미에게 내밀었다.

"내가 저금통에 모은 돈으로 토끼 인형 하나 샀어. 너한테 선물해주려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책을 전에 읽었는데, 거기서 토끼가 앨리스를 지켜줘. 이 토끼도 너를 지켜줄거야."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흰토끼는 앨리스를 지켜주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호준이는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마워. 오빠. 근데 얘는 이름이 뭐야?"

"음... 몰라. 나도 안 지었는데.. 헤헤...  아! 뿅뿅이 어때? 토끼는 뿅뿅 뛰어다니니까..."

"뿅뿅이? 뿅뿅아. 안녕~! 네가 나 지켜줘야 돼! 키히히~ 잘 받을게. 호준이 오빠야."

효미도 앨리스를 읽긴 읽었지만,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토끼가 앨리스를 지켜준 거 맞겠지..라고 생각하여 호준이가 준 토끼 인형을 고맙게 받았다.

 

효미 집에 놀러온 호준이는 나리가 가져온 치킨을 맛있게 먹으며 효미와 다행이와 함께 놀았다.

 

효미 사건은 뉴스에도 나왔었는데, 이 소식을 은희의 부모님... 그러니까 현식의 전(前) 장인, 장모도 이 뉴스를 보았다. 그래서 자신들의 딸이 남기고 간 소중한 손녀 효미가 너무 걱정이 되어 현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식의 전 장인어른이 현식에게 말했다.

 

"자네가 새장가를 들었다고는 하나, 효미는 여전히 우리 손녀일세. 내 손녀가 너무 걱정도 되고 보고 싶기도 한데 한번 시간이 되면 만나세. 우리가 내려 갈까 하는데..."

현식은 자기가 효미를 데리고 찾아뵙겠다고 했으나 현식의 전 장인은 효미는 아직 치료를 더 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굳이 자기들이 내려가갔다고 했다. 현식은 전 장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서 잘 내려오시라고 대답하였다. 

 

효미의 외조부모가 XX시로 내려오던 날, 효미와 현식은 시내 한정식 집에서 만났다. 효미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효미에게 안부를 묻고 꼭 안아주었다. 현식의 전 장인이 말했다.

"내가 한참 생각했는데,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건 어떤가? 서울에서도 사업이 꽤 잘 되었던 걸로 아는데, 어째서 지방으로 내려왔는지 자세한 건 모르겠으나 자네는 분명 내 딸의 남편이었네. 그리고 내 손녀 효미의 아빠이고... 그러니 내가 자네에게 도움을 줄 명분이 없는 건 아니지. 어떤가? 내가 내 딸 은희가 살아있었으면 당연히 물려주었을 상속분을 이렇게라도 받는다고 생각하고 내 도움을 받아주게.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사실 은희의 아버지, 즉 현식의 전 장인은 꽤 상당한 재력가였다. 사실 만약 은희가 살아 있었으면 가게 임대료 문제 때문에 서울을 떠날 일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은희가 살아있었더라도 현식은 은희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았다. 일이야 막상 닥쳐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현식은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부모 세대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그러나 은희의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정말 고집이 완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성격 덕에 큰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지만, 현식이 은희 부모에게 결혼 허락을 받아냈었던 건 현식이 판단할 때 거의 기적이 가까운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기적이 아니었다.

 

은희의 아버지가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고집에 가까운 강한 성격도 있었지만, 사람을 보는 안목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말만 번지르르한 믿을 수 없는 사람, 언젠가는 큰 일을 할 장래성이 있는 사람, 지금은 부모세대의 유산 때문에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망할 사람 등을 판별하는 능력도 탁월했던 인물이 은희의 아버지였다.

은희의 아버지는 현식의 사람됨을 보고 은희와의 결혼을 허락했던 것이었지, 결코 기적같은 건 아니었다.  

 

어쨌든 한번 결심한 건 어떻게든 한다는 걸 아는 현식은 굳이 피곤하게 은희의 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우고 싶지도 않았으며, 누구보다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고맙게도 자기에게 찾아와 준 기회를 걷어차버릴 바보는 더더욱 아니었다.

 

자기 앞으로 걸어온 행운과 기회는 그냥 기쁜 마음으로 감사히 받으면 된다. 그래서 더 큰일을 하면 될 뿐이다. 이상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 하늘이 준 복을 걷어차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끌어당김의 법칙에 따라서 이제 그런 사람에게는 '기회 없음'만 끌려올 것이다.

 

그래서 현식은 서울로 다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서울에 그 동안 살면서 정들었던 지인들이 보고 싶기도 했고, 나리도 부모님이 보고 싶을 것이었다. 예전에는 처가랑 한동네에 살아서 나리가 툭하면 자기 친정에 들러 자기 방에 있는 물건 가져오고, 필요없는 물건은 친정 자기 방에 쌓아놓고(자기 엄마 소영을 꼬드겨 집에 있는 반찬도 퍼왔던 건 안비밀)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니 내색을 안해도 답답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현식은 이 소식을 나리와 효미에게도 말했다. 나리는 이 동네에도 정들었지만, 다시 자기 고향인 서울로 간다고 생각하니 벌써 들뜬다고 하였고, 효미도 서울에 가면 혜리부터 볼 거라고 했다.

현식은 서울과 XX시를 왕복하면서 서울에서 새로운 가게터도 알아보았다. 지역은 전에 푸닭커리가 있던 곳과 가까웠다. 그리고 서울 부동산 사장(원래 현식과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에게 들었는데, 예전 푸닭커리가 있던 상가는 그 싸가지 없던 아들이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고 했다. 소문에 의하면 주식을 하다가 너무 욕심을 내다가 손실을 크게 입었다고 했다. 

 

현식은 그 소식을 듣고 '권선징악이다. 요놈아.'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 사람이 딱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자기 아버지가 품었던 생각의 절반 수준만이라도 따라 갔으면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건데 어찌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 앞에 놓여진 자신의 공부였다. 거기서 교훈을 얻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면 다시 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효미가 다시 서울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슬퍼했던 건 효미가 자기 엄마보다 더 예쁘다고 생각했던 호준이였다. 효미가 서울로 가기 며칠 전 준모는 다시 효미네 집으로 놀러왔다. 이번에는 토끼 인형이 아니라 자기가 제일 아끼던 보물이었던 F-22 프라모델을 들고 왔다. 호준이는 효미에게 프라모델을 주면서

"이번엔 내가 제일 아끼는 거 선물해주려고 왔어. 세상에서 제일 싸움 잘하는 전투기야. 나 잊지마. 나도 너 안 잊을게. 내가 크면 꼭 서울 가서 너 만나러 갈거야."

라고 반쯤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효미는 고맙게 프라모델을 받으면서

"고마워. 호준이 오빠. 나도 오빠 안 잊을게. 우리 크면 다시 만나자. 참~! 내 전화번호 모르지? 내가 알려줄게."

라고 하면서 호준에게 폰을 달라고 하더니 자기의 번호를 찍어주었다. 그리고 자기 폰에 전화를 걸어서 호준이의 번호도 받아놓았다.

 

"우리 전화도 하고, 깨톡도 주고 받고 하자. 그럼 건강하게 잘 지내야 돼. 효미야."

"응. 알았어. 근데 나도 오빠야한테 줄 선물 있어. 잠깐만..."

효미는 자기 옷장 서랍을 열고 뭔가를 꺼냈다.

"여깄다. 내가 이거 어디 뒀는지 까먹어서 한참 찾다가 어제 다시 찾았어. 자! 받아. 내 보물이야."

그건 효미가 예전에 하와이 해변가에서 주운 아쿠아 블루빛의 바다유리였다. 보석도 아닌 그저 조약돌 같은 유리조각이 호준이의 눈에는 사파이어나 아쿠아마린 같은 비싼 보석처럼 보였다.

 

"와~! 보석이다!"

호준이 눈을 크게 뜨고 바다유리를 바라보았다. 

"보석은 아닌데, 보석 같지? 이거 오빠야한테 선물로 줄게. 나중에 우리 커서 만나면 이거 나한테 보여줘야 돼~ 버리면 안 돼~"

"절대 안 버리지. 꼭 가지고 있을게. 고마워. 효미야."

호준이는 반짝반짝 파란 빛을 내는 바다유리를 받아들고 한참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간 호준이는 엄마에게 자랑하였다. 효미에게서 선물을 받았다고 말이다. 자기가 크리스마스 때 사준 선물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뻐하는 아들 호준이를 보면서 엄마 수현은 좀 얄밉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끼리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F-22 프라모델을 선물하는 호준이와 아쿠아 블루빛 바다유리를 선물하는 효미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축복과 행복이 깃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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