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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글/저곳 어딘가에

저곳 어딘가에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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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식은 가게 유리문에 

금일 개인 사정상 일찍 문 닫아요. 
-PM 6:00 영업종료-
내일 더 친절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辛(푸)닭Curry

라고 A4용지에 프린트 해서 붙여놓았다.

나리는 친구 혜리네 엄마한테 부탁해놓았고, 나리와 현식은 영업이 끝나자고 가게정리를 한 후 가까운 곳에 있는 백화점에 갔다. 아직 나리 아버님과 약속한 시간이 남아서 그 사이에 아버님께 드릴 선물(이라고 쓰고 뇌물이라고 읽는다.)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나리의 추천으로 발렌타인 21년산을 한 병 사고 나니 약속장소인 니뭉 구이집까지 가니 시간이 정확히 7시 30분 정각이었다. 아직 아버님은 도착을 안하셨는지 가게 안에는 안보이셨다. 우선 현식과 나리는 창가쪽에 자리를 잡아놓고 아버님을 기다리기로 했다. 5분 기다렸을까? 두건 쓰신 분이 들어오시자 나리가

"아빠!"

라며 손을 흔들었다. 나리 아버님도 나리에게 "우리 딸!"하고 인사를 하신 후 우리 앞 자리에 앉으셨다.

 

나리 아버님이신 한두만씨에 대한 인상을 현식과의 가상 인터뷰를 하지만 이렇다.

현식 음성변조

-에.. 아버님 첫인상요? 나이가 60 가까이 되셨다고 알고 있는데도 우선 패션부터가 어우~ 젊은 폭주족인 줄 알았어요. 거기에 팔뚝 보셨어요? 근육까지 울끈불끈하신 것이 웬만한 젊은이 두세명 정도는 사뿐하게 후두려 까고 다니실 것 같더라고요.. 나중에 알았는데 아버님 소싯적엔 강북에서 "불타는 쑝카 한두만 아니면 망우리 왕만두"라고 하면 주먹 세계에선 알아주시는 분이셨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거 제 얼굴 모자이크 처리 되는 거 맞죠? -삐-----

 

어쨌든 나리의 아버님은 굉장히 야생의 에너지가 넘쳐 보이셨다. 살짝 쫄아버린 현식에게 나리 아버님이 

"하하하 반갑네. 늘 동네에서 길 가다가 보다가 이렇게 보니 좀 기분이 묘하기도 하구만. 근데 두 사람 앞으로 어떡할 건가? 사실 자네 평소 동네에서 보면서도 늘 성실하고 손님들에게도 친절한 것이 참 맘에 들긴 했지. 그래서 내가 우리 딸 밥 굶길 일은 없다고 생각은 하네만, 그래도 내 딸 미래가 달린 일이니 조심스럽다네."

현식이 말했다.

"네. 아버님도 아시겠지만, 저에겐 어린 딸이 하나 있습니다. 전처는 3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났고요. 그런 저를 이렇게 좋아해주는 나리가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렇기에 절대 나리를 슬프게 할 일은 맹세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 나름 모아둔 돈도 꽤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에 가게를 더 확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자네 가게 지나가다 보면 특히 저녁 때 늘 손님들이 바글바글 하더구만. 허허"

두만씨와 만나는 두 사람, 그리고 몰래 도망치는 외계인과 맨인블랙,그리닝맨

"아빠, 이 사람이 아빠 드리려구 이거 사왔어. 맘에 들어?"

나리가 발렌타인을 내밀면서 아빠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슬쩍 물어봤다.

"아빠, 엄마는 지금 어때? 연락해봤어?"

"예끼. 이 녀석아. 그래도 그렇지. 아침에 그렇게 엄마한테 차갑게 아무 말도 안하고 나가면 어떡하니? 엄마가 널 얼마나 예뻐하면서 키웠는데, 그러면 엄마 가슴에 못이 박히잖아. 그러지 말어. 알았지? "

"아.. 알았어요. 아빠..."

"어쨌든 낮에 네 엄마한테 전화해봤는데, 기분 좀 풀린 것 같더라. 오늘은 내가 저녁 때 친구들과 약속 있다고 뻥치고 여기 나온 거야.. 하하 아, 그리고 자네 이거 고맙네. 허허 나중에 같이 한잔 쪽 하지."

"네, 감사합니다. 어버님. 꼭 같이 한잔 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식이 대답한 후 물었다.

"근데 아버님.. 어떡하면 어머님에게 점수를 딸 수가 있을까요? 어머님과 친해져야 될텐데..."

한두만씨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거 사람 참.. 뭐가 그리 급한가?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원래 아이디어란 뇌에 알콜을 좀 적셔줘야 술술 잘 나오는 법이야. 그래서 이거 이름이 술이 아닌가? 술을 술술 마시면 말도 아이디어도 술술 잘 나온다고 이름이 술~! 하하하"

"아... 네.. 아버님.. 아하하하하" 

사실 재미 하나도 없는 개그였지만, 현식은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어줬다.

혼자 아재 개그에 취한 한두만씨는 소주에 회오리를 하고 뚜껑을 쿨 하게 따더니 현식에게 술 받으라고 술병을 내밀었다. 그러자 현식은 

"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먼저 따라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고는 황급히 술병을 잡아 두만씨 소주잔에게 술을 따랐다.

 

그렇게 한잔 두잔 들어가니 기분이 풀리고 뇌에 걸린 Lock도 풀려 두만씨한테서 뭔가 아이디어가 하나 나왔다. 나리 어머님이 주말에 한번씩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봉사 활동 나가는데, 거기 우연을 가장하고 현식이 봉사 활동 가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였다. 나리 어머님은 봉사활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만약 고아원으로 봉사 활동을 가면서 푸닭커리의 자랑인 매콤카레치킨, 양로원으로 가면 백숙으로 메뉴를 정해서 협찬으로 가져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도 나리에게서 나왔다. 역시 3인1조로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대니 아이디어들이 술술 나왔다. 

 

좋은 아이디어 같아서 현식은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술이 알딸딸 오르자 기분이 더 좋아진 두만씨는 2차 가자고 했고, 나리는 처음엔 말리려고 했으나, 이 기회에 아빠와 현식이 확실히 정들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나리가 오히려

"2차는 내가 쏠거야. 아빠! 사장님! 내 월급 더 올려줘야 돼!" 라고 하며 횟집인 '채용 수산'으로 앞장 서서 갔다.

 

거기에서 두만은 완전히 기분이 좋아져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였다. 현식에게 의형제 맺자고 하질 않나.. 그러다가 '아니지. 장인이랑 사위랑 의형제는 아니지.."라면서 친아들처럼 대하겠다고 하다가.. 나리 울리면 가만 안둔다고 했다가... 

그리고 현식은 그런 예비 장인에게 '예~ 예~" 하면서 잘 맞춰졌다.

나리는 괜히 2차 가자고 했나.. 살짝 후회도 했지만,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2차도 끝난 후 두만이 노래방 가자는 것을 나리가 겨우 달래어서 집으로 데려갔다. 현식도 나리와 예비 장인 두만을 예비 처가 집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현식이 현관문까지 둘이 들어가는 것을 담벼락 밖에서 보고 돌아서서 효미를 데리러 가려는데, 예비 장모의 고성이 들렸다.

"어디서 술 퍼먹고 들어왔어? 둘이 술 마셨어? 아니지. 그 아저씨랑 같이 마신 거야?"

순간 현식은 뜨끔하여 발걸음을 서둘러 효미가 있는 혜리네 집으로 옮겼다. 혜리네 집에 가기 전에 빵집에 들러 마들렌과 크루아상 등 맛있어 보이는 빵을 몇 개 사고 편의점에서 가그린 작은 병은 산 다음 혹시 혜리네 엄마에게 술냄새 풍길까봐 가글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혜리 엄마가 효미를 데리고 나와서 현식에게 인사했고, 현식이 고맙다고 혜리 엄마에게 빵을 선물했다. 혜리 엄마는 현식과 나이가 비슷했으나 꽤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인지라 다른 또래 엄마에 비해 굉장히 날렵한 몸매에 매끈한 피부를 뽐냈다. 어쨌든 혜리 엄마는 '뭘 이런 걸 다~"라고 하면서 고맙게 현식이 선물한 빵을 받았고, 효미는 예의 바르게 혜리 엄마에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했다.

 

효미는 혜리 엄마가 대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집으로 천천히 걸으며 현식에게 물었다.

"아빠! 어떻게 됐어? 잘 됐지?"

현식이 잠시 복기해 보았다. 분명 예비 장인과는 오늘 한잔으로 더욱 돈독해졌다. 그리고 나리 어머니.. 아니 예비 장모와도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것 같다. 분명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할 만 했다.

"응, 오늘 뭔가 일이 잘 풀렸어."

라고 말하며 현식이 효미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엄ㅁ.. 아니 그럴 줄 알았어."

라며 효미는 별들이 챙챙 소리를 내는 듯 반짝이는 밤하늘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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